'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 커지는 유령 채권 시장
[제윤경 기자]
▲ 29일 오전 서울시내 한 폐업 매장 바닥에 대출 전단지 등이 놓여 있다. 2023.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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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가계대출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이 3번 연속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정부가 대출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례보금자리론에 이어 역전세로 인한 대출에 DSR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역전세 대책으로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가계 대출 총량을 축소해야 할 상황에서 빚을 늘리는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이 대책들은 시장에서 '빚내서 집사라'라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1월 말 출시 이후 6월 말까지 약 28조2360억 원이 풀렸다. 이 중 '신규주택 구입' 용도에 투입된 금액(15조9191억 원)은 56.4%에 달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4월부터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된 이유 중 가장 큰 영향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다수의 언론 매체들을 통해 부동산 가격이 바닥이며 다시 상승 반전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의 부동산 보도와 정부의 빚내라는 정책이 만나 시장에 또 다시 영끌이 꿈틀된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대출 세일즈를 하는 사이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연체율을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부실채권을 손실로 처리해 장부에서 지우도록 하고 있다. 6월부터는 손실로 처리된 채권을 부실채권 전문투자회사에 매각할 수 있도록 했다. 장부에서 지워져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에서조차 사라진 채권들이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혹자는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애초 금융회사들이 채권을 헐값에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같이 연체에 내몰린 채무자들을 위해 채무 조정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호주나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채무 조정을 해 줄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최근 부실채권의 거래 실태를 보면 연체 4개월 이상, 5개월 미만의 채권을 30% 전후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0%가량 높은 가격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손실 처리 후 70%가량 손해를 보고 팔아치운 셈이다.
만약 이를 헐값에 팔아치우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사례처럼 사전 채무조정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금융회사가 채무자에게 50%의 원금 조정과 이자 탕감을 진행한다면 30%에 매각하는 것보다 이익이 크다. 채무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금융회사 건전성에도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소액 무담보 채권에 대해 선진국의 사례와 같이 사전 채무 조정을 의무화할 수 있는 법안이 입법 예고되었고 부실채권은 민간이 아닌 공기업인 자산관리 회사만 매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채무자 보호와 금융회사 건전성을 더욱 강화할 방안보다는 유령같은 채권 시장으로 채무자를 내모는 것을 선택했다.
채권자 변동조회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
30여 년을 보증 한번 잘 못 선 것으로 고통을 겪다가 급기야 60대에 간암을 얻었다는 한 네티즌이 호소를 했다. 자신이 만져보지도 못한 빚 때문에 인생의 절반을 빼앗긴 심정으로 살아오면서 병까지 얻었다. 30년 전 보증을 섰고 추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것은 주채무자의 연체가 보증을 선 직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여 년간 채권이 연체 상태라면 최소한 3번의 소멸시효를 지나온 셈이다.
상사채권은 연체 후 5년이 지나면 소멸이 된다. 다만 채권자가 지급명령 신청, 소송, 압류 등의 법 조치를 취하게 되면 채권의 소멸시효는 다시 연장된다. 그 긴 시간 동안 죽었던 채권이 3번의 부활을 해 온 것이다. 물론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소멸시효완성을 주장했다면 고통을 줄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소멸시효에 대한 주장을 하고 싶어도 자신의 채권의 상태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채권의 소멸시효에 대해 알지 못한다.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시절 2017년 4월부터 채권자 변동조회 시스템을 도입했다. 채무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채권이 어떻게 거래되어왔는지, 혹은 채권의 소멸이 완성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채무자가 자신의 법적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공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이 제도가 생겨나기 전에는 채무자들은 자신의 채권이 실제 갚아야 할 빚인지, 얼마의 가격으로 제3, 제4의 회사들에 팔리는 신세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혹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으로 갚을 의무가 사라진 채권임에도 채권자의 집요한 추심에 갚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전혀 관리되지 않는 채권시장은 채무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밖에 없다.
상담 사례에는 갚을 의무가 없는 채권, 이미 다른 회사에 매각해 버린 채권, 채권을 매입할 자격이 없는 채권자 등의 불법 추심이 상당하다. 문제는 채무자들은 이것이 불법인지 정당한 채권 행사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유령시장으로 버려둔 채권 시장에서는 30여 년에 걸쳐 추심에 시달리다 병까지 얻은 채무자들이 재기의 기회를 차단당한 채 살아간다.
불법 추심조차도 확인하거나 방어하기 어려운 무법천지의 시장이 바로 부실채권 거래 시장이다. 30여 년의 연체된 보증채무는 통상 부실채권 시장에서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거래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멸시효를 연장하지도 않은 채 추심을 지속한다.
채권 시장의 무분별한 불법 추심 등 여전한 과제들이 산적하다. 법원이 지급명령을 송부하는 채권은 반드시 채권자 변동 시스템에 등록된 채권이어야 한다거나,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채권은 추심을 금지하는 등의 후속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이러한 조치들을 하지 않고 있고, 유령 채권 시장을 다시 활개치게 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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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송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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