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소녀', 임영웅 '아버지'… 말기 환자가 원하면 배워서라도 불러야죠"

전종보 기자 2023. 7. 1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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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 언성히어로] ⑨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최형균 자원봉사자

스포츠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언성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경기에서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는 우리말로 ‘보이지 않는 영웅’을 뜻합니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언성히어로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무사히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이 환자를 잘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최형균 자원봉사자가 동료와 함께 시트를 정리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봉사단입니다. 혹시 도움 필요하실까요?”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보호자와 만날 때 ‘안녕하세요’하며 인사하지 않는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례적으로 안녕을 묻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대신 지금 이 순간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걸 묻는다. 어떤 이는 유명 가수의 히트곡을 불러달라고 하며, 또 어떤 이는 건강하던 시절 그토록 좋아한 회 한 접시가 먹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부탁이기에, 자원봉사자들은 최선을 다해 청에 응한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최형균 자원봉사자는 “‘지금이 아니면 이 환자를 다신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봉사에 임한다”며 “그렇게 봉사하다보면 환자나 보호자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말기 환자 대상 호스피스 완화의료… 50여명 자원봉사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의학적 치료로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말기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서비스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등으로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환자가 원하는 방식과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외래·자문형 호스피스 ▲가정형 호스피스 ▲입원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입원 환자가 퇴원을 원하면 가정형·자문형으로 전환할 수 있고, 퇴원 후 재입원도 가능하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의 경우 현재 1인실 7개, 4인실 4개 등 총 23병상을 운영 중이며, 입원형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 암 환자에 한해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총 50여명이다. 요일별로 배정된 봉사자 6~7명이 매일 오전·오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자원해서 하는 봉사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틀 간 일반인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뒤 신청서를 접수하면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봉사자를 선발하고, 이후에도 현장에서 활동하며 평가를 통과해야 정식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활동할 수 있다.

◇신체적·심리적 돌봄 활동… “노래 불러주면 너무 좋아해”
자원봉사자들은 병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를 돌본다. 시트 교체, 목욕, 이발 등과 같은 ‘신체적 돌봄’뿐만이 아니다. 환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환자를 위해 노래하고 기도하는 ‘심리적 돌봄’, ‘영적 돌봄’도 자원봉사자들의 돌봄 활동에 포함된다. 특히 노래는 최형균 봉사자가 가장 공을 들이는 봉사활동이기도 하다. 이문세의 ‘소녀’, 임영웅의 ‘아버지’부터 60·70년대 노래와 찬송가, 찬불가까지 모두 가리지 않는다. 환자가 듣고 싶다면 유튜브를 통해 며칠씩 배워서라도 부른다. 그가 노래에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는 노래가 주는 감동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형균 봉사자는 “이곳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는 짧아도 1~2년 씩 투병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며 “그래서인지, 환자·보호자에게 부탁받은 노래를 연습해 불러주면 너무 좋아하고, 가끔씩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며고 말했다.
봉사활동은 병동 밖에서도 이어진다. ‘소원 성취 프로그램’에 접수된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외부에서 음식(의사·보호자 동의하에)을 공수해오는가 하면, 환자와 함께 환자의 유년 시절 추억이 담긴 지역에 차를 타고 함께 방문한 일도 있었다. 환자가 임종하면 사별 가족에게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사별 가족들끼리 모일 수 있는 자리를 주선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유족 요청에 의해 장지 수행에 함께 나서는 것도 자원봉사자들의 주요 활동 중 하나였다. 최형균 봉사자는 “한 달에 1~2번 씩 사별가족에게 전화를 걸면 길게는 30분, 40분씩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며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해도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직 생활 마치고 10년 째 봉사… “작은 일지만 그들에겐 큰 도움일 수도”
호스피스병동 자원봉사자들은 전문 의료인이 아니다. 병원 밖에서는 사업가, 회사원, 은퇴한 공직자, 주부 등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형균 봉사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5년 정년퇴직 전까지 40년 가까이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아왔다. 그런 그가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결심하게 된 건 정년퇴직을 1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최형균 봉사자는 “퇴직 후 집에만 있긴 싫어 봉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성당 주보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 교육을 한다는 공고를 봤다”며 “일단 교육을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매주 자원봉사를 해온 게 벌써 10년이 다 돼간다.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최형균 봉사자는 “환자와 보호자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작지만, 그들에게는 큰 도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힘닿는 데까지 봉사할 것… 호스피스 인식 개선 됐으면”
올해 70세인 최형균 봉사자는 여전히 봉사를 멈출 생각이 없다. 몸이 허락한다면 힘닿는 데까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다. 그는 “내쫓기 전까진 계속 해볼 생각(웃음)”이라며 “그러기 위해 꾸준히 피트니스 센터에서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하며 체력 단련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떨까? 최형균 봉사자는 “처음 봉사를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아내였다”며 “건강하기 때문에 남을 도울 수 있는 거라며 응원해줬다. 지금도 아내, 자녀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해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최형균 봉사자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호스피스 완화의료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닌, ‘가족 곁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최형균 자원봉사자/서울성모병원 제공
<4담: 네 가지 담지 못한 이야기>
1. 소아청소년 완화의료센터(시범운영)가 생기기 전까진 어린 환자들도 같은 곳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았다. 최형균 봉사자 역시 봉사하며 종종 10살도 채 안 된 환자들을 만났다.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일찍 철이 든 걸까. 아이들은 그에게 “봉사하느라 힘들 텐데 안 와도 괜찮다”, “혼자 이겨낼 수 있다”며 제법 어른스러운 말들을 건넸다고 한다.

2. 환자들이 슬픈 노래만 듣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신나는 트로트를 불러달라고 하는 환자들도 있다. 환자가 원하면 의료진·보호자 동의하에 봉사자 3~4명이 함께 병실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환자가 너무나 좋아한다고 한다.

3. 그에게 임종을 앞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다. ‘대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마운 일, 미안한 일 모두 의식이 남아있을 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최형균 봉사자는 “의식이 있을 때 말하지 않고 며칠이 지나면, 의식이 없어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며 “그래서 보호자들에게도 ‘못 듣는 것 같아도 지금 이야기하면 다 듣는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을 권한다”고 했다.

4. 환자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던 그는 장지수행에 나선 일화를 들려주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고인의 임종 전 부탁으로 장지에서 고인의 지인들과 함께 이문세의 ‘소녀’를 불렀는데, 그 순간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소녀’는 고인이 생전에 즐겨듣던 노래로, 당시만 해도 ‘소녀’를 몰랐던 최형균 봉사자는 그를 위해 노래를 연습해 불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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