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을 걸어 금강소나무 숲에서 잠들었다

손민호 2023. 7.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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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④ 경북 영양 자작나무 숲


경북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에는 산책로가 세 개 있다. 1993년 솔잎혹파리 피해 지역에 심은 묘목이 서른 살 청년으로 자랐다.
여름은 나무의 시간이다. 여린 잎은 크고 튼튼하게 자랐다. 나무가 모인 숲은 필터 같다. 숲을 통과한 바람은 부드럽고, 빛은 투명하다. 경북 영양의 검마산(劒磨山·1017m)은 장대한 숲이 일품인 산이다. 죽파리 자작나무 숲과 검마산 자연휴양림이 검마산의 품에 안겨 있다. 자작나무 숲은 1993년 산림청이 인공 조림한 숲으로 30㎝ 크기의 묘목이 서른 살 청년으로 자랐다. 인제 자작나무 숲처럼 나무가 굵지는 않지만, 금강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자작나무 숲을 걷고, 금강소나무가 일품인 검마산 자연휴양림에서 캠핑하며 오지의 숲에 푹 젖었다.

검마산 품에 자리한 자작나무 숲


경북 영양은 멀다. 고속도로를 나와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한참 달려야 한다. 검마산은 영양군 수비면에 자리한다. 산이 뾰족하고 칼을 닮았다고 해서 ‘검마(劒磨)’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생김새는 펑퍼짐하다. 지모신(地母神)을 의미하는 ‘검’에서 유래됐다는 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원리의 검마산 자연휴양림과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은 가깝다. 직선거리는 2㎞가 안 되지만, 임도를 따르면 10㎞가 넘는다. 휴양림에서 자작나무숲까지 걷는 건 무리다. 우선 죽파리에서 자작나무 숲을 올라갔다가 내려와, 검마산 자연휴양림으로 이동해 하룻밤 묵는 걸 추천한다.
하늘에서 본 영양 자작나무 숲. 연초록 풍성한 잎과 흰 수피를 가진 자작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영양 자작나무 숲의 면적은 약 0.3㎢로 마라도 크기와 비슷하다.

죽파리 마을을 지나 자작나무 숲 입구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 자작나무 숲까지 3.2㎞쯤 걸어야 한다. 널찍한 임도 옆으로 청정한 계곡이 흐른다. 졸졸 흐르는 맑은 물에 손을 담그자 서늘한 한기가 몰려온다. 오랜 시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덕분에 숲은 울울창창하다. 물박달나무, 단풍나무, 금강소나무 등 나무들 키가 훤칠하다. 임도 걷기가 지겨울 때쯤이면, 중간중간 100~200m 거리의 호젓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1시간쯤 가면 드디어 자작나무가 나타난다. 자작나무 군락지는 솔잎혹파리 피해 지역을 인공 조림하면서 탄생했다. 자작나무 숲에는 3㎞쯤 길이의 산책로와 임도가 이어진다. 트레킹은 안내판을 참고해 1코스로 올라가서 ‘전망데크’를 찍고 2코스로 내려오면 된다. 하얀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서자 마음까지 환해진다. 자작나무 숲은 단풍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을 으뜸으로 꼽지만, 연초록 잎사귀들이 풍성한 여름철에도 매력적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숲길에서 모퉁이를 돌면 광대한 백두산 자작나무 숲이 나올 것 같고,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봤던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이 펼쳐질 것 같기도 하다.

죽파리 마을에서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임도 옆으로 맑은 계곡이 흐른다

남한 땅에서는 자작나무 보기가 쉽지 않다. 본래 추운 곳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평안도 일대에서는 자작나무가 흔했던 모양이다. 시인 백석은 ‘백화’란 시에서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라고 했다. 비록 인공 조림한 숲이지만, 여기도 온통 자작나무다.

자작나무 숲 사이를 이리저리 휘돌아 오르다 보면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목교를 지나 전망데크에 닿는다. 고도를 보니 841m. 제법 높이 올라왔다. 전망데크에서 비로소 조망이 열린다. 산사면을 빽빽하게 수놓은 자작나무들의 독특한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다. 자작나무는 무리 지어 자란다. 홀로 자랄 수 없기에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받쳐주고 서로 북돋워 준다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기특한 나무다. 자작나무 숲 안에 금강소나무 몇 그루가 콕콕 박혀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자작나무와 금강소나무가 기막히게 어우러진 모습은 검마산 자연휴양림에서 만날 수 있다.


반딧불이 반짝이는 검마산 자연휴양림


검마산 자연휴양림 2야영장 뒤편에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있다.
검마산 자연휴양림은 휴양림계의 오지다. 도심에서 워낙 먼 덕분에 휴가철을 제외하고 주말에도 방이 빈다. 야영장 앞에 작은 계곡이 있다. 텐트 치고 물소리 들으며 ‘계곡멍’을 즐긴다. 서둘러 저녁을 챙겨 먹고 숲에 어둠이 내리는 걸 하염없이 바라봤다.

오후 10시가 지나자 왁자지껄하던 사람들이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고요한 야영장은 반딧불이가 활동할 시간이다. 계곡에서 반짝반짝 연방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불빛은 반딧불이가 제 몸을 부싯돌 삼아 켠 듯 절박하면서도 따뜻하게 보인다. 저 불빛에 몸이 닿으면 마법에 걸릴 것 같다.

휴양림계의 오지인 검마산 자연휴양림의 야영장. 깊은 밤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다음 날, 아침 산책 삼아 휴양림 임도트레킹에 나섰다. 2야영장을 지나면 쭉쭉 미끈하게 뻗은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미인송처럼 예쁘다. 이렇게 금강소나무가 좋은 곳은 흔치 않다. 이 숲에 반려견 놀이터가 있다. 개가 그야말로 ‘개호강’ 하는 곳이다.

갈림길에서 ‘검마사 터’ 방향이 아닌 위쪽 길을 따른다. 구불구불 이어진 임도를 20분쯤 가면, 자작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허리에 자작나무가 가득하고, 능선 정상부에는 키 큰 금강소나무가 자란다. 소나무 종류 중에서 제왕격인 금강소나무와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자작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은 낯설어서 더욱 감동적이다.

검마산 자연휴양림 임도길에서 자작나무와 금강소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임도를 따라 갈미봉 아래를 크게 돌면 휴양림으로 돌아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가 잘 나와 길 찾기가 쉽다. 서너 번 모퉁이를 돌면 검마사 터에 닿는다. 거대한 느티나무가 몇 그루 자리한 오래된 절터로 지금은 도성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절터에서 내려오면 2야영장 위 갈림길이다. 휘파람 불며 느긋하게 1야영장으로 돌아와 산책을 마무리한다.

■ 여행정보

김영희 디자이너

경북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내년 정식 개장한다. 탐방안내소를 만들고 길을 정비하는 중이다. 개장하면 죽파리에서 자작나무 숲까지 전동차를 운행한다. 내비게이션에 장파경로당(영양군 수비면 상죽파길 99-8)을 찍고 찾아간다. 장파경로당 앞에 주차장과 임시 안내소가 있다. 안내소에서 1.5㎞ 더 가면 자작나무 숲 입구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자작나무숲까지 3.2㎞, 1시간쯤 걸어야 한다. 자작나무숲에는 산책로가 세 개 있는데, 좀 헷갈린다. 발길 닿는 대로 전망데크까지 갔다가 내려오면 된다. 왕복 3㎞, 느긋하게 2시간쯤 걸린다. 검마산 자연휴양림은 반려견과 독서를 테마로 한 휴양림이다. 반려견과 함께 숙소와 야영장을 이용할 수 있고, 숲속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1야영장의 반딧불이, 2야영장 위쪽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는 검마산 자연휴양림의 자랑거리. 자작나무와 금강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임도 트레킹은 2야영장~임도~자작나무 군락지~검마사 터~2야영장 코스로 약 7㎞ 거리다. 2시간 20분쯤 걸린다.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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