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극한대립 끊자" 여야 11인 원로회 출범…국회의장만 8명

김준영 2023. 7.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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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정서적 내전 상태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서울-양평 고속도로 문제를 대하는 여야의 모습을 국가 내전 상태에 비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생각이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여야의 극한 대립이 사회적 분열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의 개인 사무실에 여야 원로들이 모여 '11인 원로회'(가칭) 발족에 뜻을 모은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정의화ㆍ문희상ㆍ김형오 전 국회의장,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대철 헌정회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원로회 멤버인 임채정ㆍ박희태ㆍ강창희 전 의장은 이날 개인 사정상 불참했다. 사진 11인 원로회

이런 양극단 정치를 타개하기 위해 여야 원로 정치인이 최근 뜻을 모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정대철(79) 헌정회장 사무실에 정 회장을 비롯해 여야의 최고령 상임고문인 신영균(95) 국민의힘 상임고문과 권노갑(93)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그리고 전직 국회의장 5명(김원기·김형오·문희상·정세균·정의화) 등 8명이 모였다.

왜 모였을까. 한 마디로 “나라가 걱정된다. 우리라도 뭉쳐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모임을 주도한 신영균·권노갑 고문은 1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처럼 여야가 서로 반목만 하게 그대로 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치가 국민 혐오 대상으로 전락하는 모습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책임감을 느꼈다”고 각각 강조했다.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밖에 참석 의사를 밝힌 전직 국회의장 3명(강창희·박희태·임채정)을 더해 내친김에 ‘11인 원로회’(가칭)로 이름도 정했다. 일회성 모임으로 그칠 게 아니라 정치 선배로서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후배 국회의원에게 본을 보이자는 취지다. 전직 국회의장은 골고루 여야 4명씩 포진했다. 11인 원로회 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한 전직 국회의장이 같은 뜻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의장 8명과 여야의 최고령 원로, 헌정회장이 다시 정치 현실에 목소리를 내겠다며 세운 원칙은 ‘서로 다른 걸 인정하자’다. 한자로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영어로는 ‘agree to disagree’다.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철학이기도 하다.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김경록 기자

정대철 헌정회장은 “내 의견과 다르면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 풍토가 굳어지고 있어 문제”라며 “민주주의의 기본은 상대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여야는 상대를 다르다고 보지 않고 잘못됐다고 본다”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태도에서 심각한 대결 구도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로회에 참여한 다른 인사도 정치의 극단화를 끊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당 간사 역할을 맡은 김형오 전 의장은 “정치가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며 “여야 원로가 모여서 화합을 도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현역 정치인에게 작은 자극제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인 문희상 전 의장도 “한국 정치가 너무 극단적·이분법적으로 ‘적’과 ‘동지’로 나뉜 양극화 모습을 띠고 있다”며 “원로들이 미약하나마 여야가 화합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고 또 베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모은 지혜는 공식 창구를 통해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원로회 관계자는 “현역 의원 중에서도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 전반기 의장을 지냈고,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현재 의장”이라며 “이들을 통해 우리의 작은 지혜라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1인 원로회는 제75회 제헌절인 7월 17일 첫 공식 모임을 갖고 정식 출범한다. 월 최소 1회 모임을 정례화할 예정이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헌의원을 향해 “지금은 대한민국의 안위와 3000만 민중의 화복(禍福)이 우리 각 개인의 손에 달렸으니 우리가 잘못하면 해(害)도 우리가 당하고 책망도 우리가 질 것이며 잘만 하면 모든 복리가 날로 증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75년이 흐른 현재도 곱씹을 얘기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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