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피해자와 계속 다투겠다는 정부
정부 추진한 제3자 변제 피해자 거부로 제동 걸려
전범기업 사과와 배상 배제된 방식은 근본 해법 될수 없어
정부, 공탁 강행하며 압박 말고 피해자 원하는
자산 현금화 통한 구제의 길도 열어두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배상 확정 판결로 인한 한·일 관계 경색을 풀 해법으로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안이 꼬였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기업인 포스코 등 국내 기업들로부터 걷은 기금으로 패소한 전범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 지급에 들어갔는데 일부 피해자들이 거부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제3자 변제를 거부한 원고 4명을 상대로 지난 4일부터 광주·전주·수원지법 등에 공탁을 신청했는데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와 재단은 법리상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당사자가 허용하지 않을 경우엔 제3자가 변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민법 규정을 근거로 한 공탁관들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는 결국 법원에 공탁의 효력에 대한 판단을 구하는 절차에 착수했는데 장기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길게는 십수 년에 걸친 소송을 통해 2018년 10~11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고도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할 텐데 언제 끝날지 모를 법정 공방을 또 이어가야 한다니, 피해자들은 속이 터질 노릇일 게다. 특히 고령의 생존 피해자들 심정이야 더 말할 게 있을까. 3자 변제가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일본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지만 납득할 수 없다.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만 바라보고 피고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1부는 2012년 5월 이춘식(103) 할아버지 등 4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4명의 대법관 만장일치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듬해 파기환송심과 재상고를 거쳐 2018년 10월 대법관 13명으로 이뤄진 전원합의체에서 11대 2의 의견으로 원고 1인당 1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을 확정됐다. 양금덕(93) 할머니 등 다른 5명의 피해자들도 그해 11월 대법원에서 같은 취지로 승소 판결을 받는 등 배상이 확정된 강제징용 피해자는 지금까지 총 15명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전범기업 측은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구권 협정은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 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며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위자료) 청구권은 살아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만큼 피고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게 순리다. 이들 기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 판결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있는데도 정부가 피해자들이 원하지 않아 법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제3자 변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수다. 지난 3월 정부가 제3자 변제안 추진을 발표한 이후 양국 정상의 셔틀 외교가 복원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복원 등이 이뤄진 건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양국의 공동 노력이 뒷받침되는 게 바람직하고 그래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피해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사법권 훼손 논란까지 감수하는 등 우리 측의 일방적 양보만으로는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정립할 수 없다.
우리 측의 대승적 양보에도 일본 측은 전범기업의 기금 출연을 거부하는 등 강제징용에 대한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양보해 먼저 물 잔의 반을 채우면 일본이 호응해 나머지 반을 채울 것이라는 기대는 희망고문으로 굳어져 가는 모양새다. 결국 3자 변제가 한반도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해법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일 관계 개선의 전환점이 된 2002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취지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함께 열어 가자는 것이었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원치 않는 해법을 강요하는 것은 정부의 폭력이고 이들의 사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제3자 변제를 수용한 피해자들의 선택은 그것대로 존중하되 전범 기업의 배상을 원하는 이들에겐 그 방식으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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