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유령 영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조선시대 형법 ‘대명률’ 307조. 조부모, 부모, 형, 누나, 오빠, 언니, 외조부모, 남편, 시부모, 시조부모를 죽이면 능지처사형이다. 미수에 그쳐도 참형이다. 존속살해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엄벌에 처한다. 반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면 형벌은 곤장 60대, 노역형 1년에 그친다. 비속살해는 일반적인 살인보다 가볍게 처벌했다. 그나마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처벌은 대폭 경감된다. 악독한 부모가 죄 없는 자녀를 죽여도 사형에 처하진 않는다.
아무리 위아래가 엄격하다지만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1746년 편찬한 ‘속대전’에 와서야 흉악한 의도로 자녀를 죽인 부모를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비로소 명문화했다. 하지만 입법 취지를 밝힌 부칙은 이렇다. “이것은 악행을 징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 죽은 자식의 목숨을 부모의 목숨으로 갚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선언적 성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대윤은 형사사건 판례집 ‘흠서박론’에서 이 부칙조차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가축은 사람이 먹여살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축의 고기를 먹고 가죽을 벗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 신하는 임금이 먹여살린다. 그러므로 임금이 신하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노비는 주인이 먹여살린다. 그러므로 주인이 노비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자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라고 보았던 것 같다. 요컨대 ‘부모가 자식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심대윤의 생각이었다.
성급히 비난하면 곤란하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이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관념이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전통 사회의 인간은 동등하지 않았고, 인간은 동등하지 않다는 관념이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국가의 행정력이 사회 전반에 일일이 개입하지 못하는 시대다. 사회 구성원이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려면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군주는 신하를, 부모는 자녀를, 남편은 아내를, 주인은 노비를 지배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므로 존속살해는 무거운 죄, 비속살해는 가벼운 죄로 취급했다. 그 부작용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국가와 사회가 구성원의 위계를 바탕으로 구성된 현실에서 그보다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런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일명 ‘가족동반자살’로 불리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빈번히 뉴스에 등장한다.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부모에 종속된 존재로 간주한 결과다. 법원의 판결도 조선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존속살해에 대한 처벌은 무겁지만 비속살해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가볍다.
법원을 비난할 것 없다. 법원은 사회의 법관념을 따르기 마련이다. 법원이 비속살해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비속살해를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중증 자폐를 앓는 아들을 30년간 돌보다 살해한 사건, 남편이 치매를 앓는 아내를 10년 넘게 간병하다 살해한 사건, 생활고 때문에 갓 태어난 아이를 살해한 사건, 모두 명백한 살인이지만 여론 반응은 사뭇 다르다. ‘오죽하면’이라는 분위기가 대세다. 판결도 온정적이다. 나 역시 이런 비극적 뉴스를 접하면 분노보다 동정이 앞서곤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우리는 여전히 전통적 법관념에 지배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없는 ‘유령 영아’가 1000명에 가깝다고 한다. 범죄 혐의가 있는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여론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성인 1000명이 행방불명이라면 반응이 이 정도에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비속을 소유물로 간주하는 전통적 관념의 굴레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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