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시험성적 위주로 뽑는 대입 정시가 ‘공정 수능’이라는 착각

이도경 2023. 7. 1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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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고교에서 3학년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달 19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밝힌 이후 수능을 불과 넉 달 남겨 둔 고3 교실과 학원가는 크게 술렁였다. 수험생 혼란은 적어도 오는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평가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文정부 ‘공정 대입’ 기치 정시 확대
수도권·서울·강남에 유리한 결과

킬러문항 빼면 공정하다는 인식은
가계 소득 수준·사교육 접근성 등
수능에 내포된 불공정성 가릴 수도

서울대 신입생 중 수도권 소재 학교 학생 비율은 2019년 61.8%에서 지난해 64.6%로 뛰었습니다. 전국 의대 합격자 가운데 수도권 출신 비중도 같은 기간 44.2%에서 46.3%로 올랐습니다. 수도권 학생들의 정시 경쟁력 우위 때문이었습니다. 정시에서 서울대 합격증을 받은 인원 중 수도권 출신은 2019년 71.9%에서 2022년 78.4%로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의대 역시 54.3%에서 60.3%로 껑충 뛰었습니다.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어떨까요. 서울대 정시 합격자 중 서울 지역 학생 비중은 2019년 42.09%에서 올해 48.37%로 높아졌습니다. 서울 지역 고교생은 전국의 16% 수준에 불과합니다. 강남 3구는 어떨까요. 서울대 정시 합격자 중 강남 3구 비율은 2019년 20.6%에서 2022년 22.1%, 의대는 20.8%에서 22.7%로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이 지역 학생들의 서울대·의대 수시 합격자 비중은 7~9% 수준이었습니다.

공정한 결과로 보입니까. 문재인정부가 ‘공정 대입’을 내걸고 정시를 늘린 기간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지난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했지만, 이후 돌변했습니다. 모든 대학에 정시 비중을 30%로 강제하더니 급기야 이른바 ‘조국 사태’ 국면을 거치면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위의 수치들은 그 결과물입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는 수도권, 그 중에서 서울, 특히 강남 지역에 유리하다.” 당시 현장 교사와 전문가들이 뜯어 말리고, 심지어 다수의 교육부 관료들조차 우려를 표했지만 문재인정부는 결국 강행했습니다.

수능은 한날한시에 똑같은 문제를 풀어 더 많이 맞힌 학생에게 높은 점수가 돌아갑니다. 정시는 수능 성적을 중심으로 선발합니다. 맞힌 문항 수만큼 점수를 받는 수능, 수능 점수 순으로 대학 입학 우선권을 주는 정시, 얼핏 공정해 보입니다. 수능이 공정하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위 수치들은 ‘정의 실현’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동안 수도권과 서울, 강남 학생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이죠.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를 ‘착각’이라고 단언합니다. 수능의 모태가 됐던 미국의 SAT(대입자격시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실력대로라고? SAT처럼 표준화된 시험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배경을 가진 학생이라도 지적 장래성을 보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여겨지나 실제 SAT 점수와 수험생 집안 소득은 비례관계를 보인다.”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연관도가 매우 높다.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점수는 올라간다.” “고교 성적도 집안 소득 수준과 연관돼 있지만 SAT 점수는 그 연관성이 더 크다.”

족집게 과외와 유료 SAT 모의고사 등으로 단련하는 부유층 자녀와 일반 가정의 자녀는 애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한다는 게 그의 입장입니다. 더 위험한 건 이렇게 벌어진 점수 격차가 ‘실력’과 ‘공정’으로 수용되는 상황입니다. 패자에겐 불필요한 열패감을, 승자에겐 지나친 거만함을 심어주는 시스템이란 이유입니다. 그래도 SAT는 한해 여러 차례 볼 수 있는 대입 자격고사입니다. SAT 성적은 미국의 주요 명문대에서는 전형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반면 수능은 1년에 딱 한 번 치러지는 시험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만으로 명문대 진학 우선권이 쥐어 집니다. 샌델 교수가 정시를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요.

‘킬러문항’ 논란이 한 달 가까이 입시 현장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킬러문항 제외’ ‘공교육으로 해결 가능한 문항 출제’를 ‘공정 수능’의 조건으로 설정했습니다. 킬러문항은 사실 ‘반칙’에 가까웠기 때문에 긍정적인 부분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킬러문항을 뺀 수능이 공정하다는 인식은 위험해 보입니다. 수능 자체에 내포된 불공정성을 가려줄 위험성 때문입니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입장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곤란할 겁니다. 네 가지 환경에 놓인 학생을 가정해보겠습니다. ①고교에서 수능 준비가 가능하고 사교육 접근성도 좋다. ②고교에서 수능 준비는 가능하나 사교육 접근성은 떨어진다. ③고교에서 수능 준비는 어렵지만 사교육 접근성은 좋다. ④고교에서 수능을 준비하기도 어렵고 사교육 접근성도 떨어진다. ①은 100점 ②는 95점 ③은 90점 ④는85점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명문대에 진학 기회를 줘야 공정할까요. 현재 정시는 학생 노력만으로 85점을 받은 ④가 가장 후순위가 됩니다. 실제 전국에 산재한 고교별로 제공하는 공교육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현재 지역의 고교 대다수는 정시보다 수시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으로 해결 가능한 문항’이란 전제는 현장에선 허상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상대평가 체제에선 변형된 형태의 킬러문항 출제도 불가피해보입니다. 공교육이 수능을 제대로 준비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선 사교육 접근성은 여전한 변수일 겁니다. 수능을 여러 번 볼 수 있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동일 잣대로 평가하는 점도 공정성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교사와 교수들도 풀기 어려운 킬러문항의 존재는 지난 30년 동안 변별력 괴물이 돼 버린 수능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입니다. 더 이상 기계적인 공정에 매몰돼 학생들을 5지 선다형 문제 풀이로 내몰지 말라는 겁니다. 킬러문항을 빼면 수능이 공정해진다는 말은 아마도 ‘착각’일 것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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