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없다? 자녀가 보낸 요양원, 호전돼도 나가기 쉽지 않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신성식 2023. 7. 1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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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요양원에 입소한 노모와 자녀가 손을 꼭 잡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성장을 거듭해 등급을 받은 65세 이상 어르신이 100만명을 넘었다(2022년 102만명). 노인의 11%이다. 85세 이상 노인만 따지면 37%가 이용한다. 자녀의 부모 부양·돌봄 기피 세태와 맞물려 '사회적 효'를 담당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다 생을 마감하는 노인이 13만여명(2021년)에 달한다. 뇌졸중·파킨슨병·치매 등의 노인성 질환 탓에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노인을 위한 복지로 자리 잡았다.

「 장기요양보험 15년 빛과 그림자
수급자 100만 돌파,만족도 80%대
본인이 요양원 입소 결정 5% 불과
"돌봄가족 지원해 시설행 막아야"

신재민 기자

수급자가 되면 요양시설에 입소하거나 집에서 요양보호사·간호사 등의 방문서비스를 받는다. 2020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 입소자의 만족도는 84%, 방문요양·목욕 만족도는 각각 79%, 85%이다. 꽤 높다.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장기요양보험 시행 15주년 심포지엄에서 이런 성과와 보완할 점을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보완할 점이 자기결정권 보장이다. 지금은 미미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할지,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스스로 결정한 비율이 8.6%에 불과하다. 68.8%는 자녀(손자녀 포함), 11.7%는 배우자가 결정한다. 특히 요양원 입소 본인 결정 비율은 4.7%로 떨어진다. 자녀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신재민 기자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하소연


혼자 살던 85세 파킨슨병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에만 겨우 오갈 정도였다.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수발을 들었고, 저녁에는 자녀들이 식사 등을 챙겼다. 자녀들은 늘 낙상을 걱정해 요양원 입소를 권했다. 이 여성은 완강히 거부하다 거의 반강제로 입소했다. 다행히 요양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단다.
자녀에게 떠밀려 요양원에 들어온 80대 남성은 6개월 만에 퇴소했다.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다른 입소 노인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나가게 해달라"고 계속 자녀를 졸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폭력 성향까지 나타나자 결국 퇴소했다.
노인에게 요양원 환경은 매우 낯설다. 한 유튜버가 소개한 사례는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약간의 치매 증세에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90대 남성은 탁 트인 4인 병실, 한 평도 안 되는 자기 공간(침대) 등의 낯선 환경에 처하자 잠을 거의 못 잤다. 식탁의 무표정한 다른 입소자들도 그를 당황케 했다. 사소한 일로 옆자리 노인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는 "내가 있을 데가 아니다"라며 하루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허사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했다.
신재민 기자
김후남 상록수 실버타운 원장(대구 달서구)은 "요양원에 스스로 입소하는 어르신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입소 노인의 상당수는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일각에서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요양원에서 평균 2년 8개월 산다. 5년 넘는 경우도 16%에 달한다. 강은나 연구위원은 "장기요양 이용자의 60~70%가 의사 표현 능력이 있다. 그런데도 장기요양 서비스 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본인에게 여러 정보를 주고 치료를 어디서 받을지, 어떤 걸 받을지, 어디서 돌봄을 받을지, 누구한테 받을지 등을 결정하게 도와야 하는데도 자녀들이 이런 걸 묻지도 않고 '어머니 (요양원이나 병원에) 가야겠어요'라고 말한다. 환자의 결정권이 무시된다"고 말한다. 강은나 위원은 "연명의료 중단 시기에만 자기결정권을 보장할게 아니라 장기요양 단계로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후남 원장은 "혼자서 밥을 챙기지 못하거나 낙상 가능성이 큰 노인이 입소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며 "요양원의 수준이 많이 좋아져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개선됐고 운영도 투명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요양원을 선택하는 노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요양시설이나 노인복지주택에 들어갈 의향이 있는 노인이 31.3%에 달한다(2020년 노인실태조사).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1인가구 재택돌봄 확대 절실


요양원에 입소했다가 집으로 돌아가 재가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6%(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정부의 실태조사에서 "수급자 건강이 호전되는 경우 집으로 모실 의향이 있나"라고 가족에게 물었더니 74.6%는 "없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74.4%)'였다. 자녀가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돌보는 게 절대 쉽지 않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건강이 나빠져 자기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경우 자녀가 돌봐야 한다고 강제할 수는 없다"며 "왜냐하면 자녀는 직장에 나가야 하고, 부모 돌봄을 두고 자녀 부부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다. 자녀도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나 위원은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려면 장기요양 대상에 들기 전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당사자 의사를 좀 더 반영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앞으로 혼자 사는 장기요양 대상자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요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며 "재가급여 이용시간을 늘리고, 식사와 영양, 외출 등을 지원하며 방문진료나 비대면 진료 같은 재택의료 서비스를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가 노인이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돌봄 가족 휴식 지원, 단기 보호 확대, 재가 노인 방문 상담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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