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다큐'는 2차 가해…"잘못이다, 멈춰라" 함께 외치자 [김재련이 소리내다]

김재련 2023. 7.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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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지지자, 법원 인정 사실 부인
계속된 공격에 피해자는 절망
야당은 부추겼고 국가는 뒷짐
박원순을믿는사람들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변호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피해자 혼자 맞서지 않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3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박 전 시장은 3년 전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으로 피소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서울행정법원 판결, 서울 북부지방검찰청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박 전 시장의 위력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실 관계는 정리됐다고 본다.

그럼에도 지난 4월 경남 창녕에 있던 박 전 시장의 묘는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급기야 박원순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2021년 나온 손병관의 책 『비극의 탄생』을 토대로 그의 결백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첫 변론’을 만들어 개봉한다고 한다.

5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에서 박원순 다큐멘터리 〈첫 변론〉 제작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그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피해호소인’으로 불렸던 피해자는 깊은 절망을 전해온다. 피해자를 대리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국가 기관을 통해 인정된 ‘사실’을 다시 알리는 것밖에 없다.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믿는 사람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함께 해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2021년 4월 박 전 시장의 유족이 그의 성폭력 사실을 인정한 인권위 결정이 잘못되었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2차 가해가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소송 제기 자체를 2차 가해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자 했다. 법정에서 “힘들었다, 이제는 멈춰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제대로 사과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으로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유족의 소송 제기로 ‘가해 행위’가 심판대에 올랐다. 오랜 심리 끝에 서울행정법원은 명확한 결론을 냈다. 이 판결문은 피해자를 살리는 처방문과도 같다.

“(박 전 시장은)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자해에 의한 사망을 선택하여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를 스스로 상실하였다. 망인은 자신이 고소됐음을 알고 곧바로 자해에 의한 사망을 선택하였다. 그 의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1심 판결문).”

그럼에도 박 전 시장을 믿는 사람들은 사실의 영역에서 판단해야 할 성폭력의 문제를 믿음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안에서 그들이 믿고 싶은대로 사실을 비틀어 재탄생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비극의 탄생’이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끝없이 진행 중이다. 오락실에서 두더지게임을 하는 심정이다. 피해자가 망치를 들고 두더지 머리통을 내리치면 옆에서 끊임없이 다른 두더지들이 솟아오른다. 다시 1심 판결문을 인용한다.

“망인의 이 사건 각 (성희롱)행위는 피해자가 생계를 위하여 근무하고 있는 공간이나 밤늦은 시각 비밀스러운 대화방에서 이루어졌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로 만드는 내용이 위 각 행위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피해자가 그동안 망인의 위 각 행위를 묵인한 것은 서울시장의 심기와 컨디션을 보살펴야 하는 비서 업무의 특성상 망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위와 같은 망인의 각 행위로 인하여 초래된 불편함을 자연스레 모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 사건 각 행위는 일회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행해져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그럼에도 박원순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피해자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믿음의 동력은 무엇일까. 성폭력은 인권에 관한 문제임에도 진영 논리에 따라 입맛대로 다루거나, ‘피해호소인’이라는 퇴행적 표식을 붙인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더불어민주당의 플래카드가 피해자를 공격해도 좋다는 정치적 ‘시그널’이었다.

2차 가해를 한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태도도 관대하기만 하다. 피해자 이름을 악의적으로 공개했지만 집행유예를 받았다. 공무원이 아닌 가해자에게는 솜방망이 형벌일 뿐이다. 피해자의 용서가 없었음에도 가해자는 사법부로부터 ‘용서’받은 것이다. 피해자를 위한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는 2차 피해가 발생했을 때 국가, 지자체가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원순 다큐멘터리는 국가기관을 통해 인정된 사실도 부정하고 있는 2차 가해의 전형이다. 그런데 국가와 지자체는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2021년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정치인들이 공분을 표했고 2차 가해자들을 서둘러 구속수사했다. 죽은 피해자를 향한 공감이 왜 살아있는 피해자에게 향하지 못하는가? 살아있는 피해자들이 위정자들의 이런 태도를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6월 27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첫 변론' 개봉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가 손병관 기자가 쓴 '비극의 탄생' 책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첫 변론’을 만드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면 여러분의 연대는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

이는 이대호 전 서울시 미디어비서관이 지난달 27일 다큐멘터리 첫 변론의 개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성폭력은 사실의 영역이다. 사람을 믿고 말고는 믿음의 영역이다. 가해자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국가기관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인정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일 뿐 아니라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피해자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맞서야 하는 이유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 사람이 아닌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침묵하지 말고 연대하면 좋겠다. ‘잘못된 행동이야, 멈춰’라고 목소리 내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 네 사람이 되고, 그 목소리가 모이면 함성이 된다. 우렁찬 함성만이 믿음이 영역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하고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다리가 될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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