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해냈다, 김자인 30번째 금메달
‘전설의 귀환을 목격했다. 막을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다. 김자인이 월드컵 리드에서 30번째 금메달로 다시 한번 역사를 썼다. 진정한 인내심과 탁월함의 아이콘이다.’
스위스의 한 클라이밍 코치 겸 사진작가 김자인(35)의 우승 소식을 접한 뒤 사진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김자인은 지난 10일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여자부 리드 결승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약 15m 높이의 암벽을 6분 안에 높이 오르는 ‘리드(lead)’는 김자인의 주 종목이었다. 경쟁 선수들이 고전했던 37번 홀드를 가뿐히 통과한 김자인은 43번째 홀드(43+)까지 터치했다. 2위를 차지한 일본의 구메 노노하(38+)를 압도적으로 따돌렸다. 남녀를 통틀어 월드컵 클라이밍 단일 종목에서 30번째 금메달을 딴 것은 김자인이 처음이다.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등을 포함해 무려 45번째 국제대회 우승이다.
김자인은 경기 후 “아마 자고 있을 딸에게 말하고 싶다. ‘규아야 사랑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엄마가 된 뒤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2009년) 첫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얼떨떨하다. 매 순간 소중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했기에 받을 수 있었던 선물 같다”고 했다.
김자인은 ‘엄마 클라이머’가 된 이래 첫 우승 감격을 맛봤다. 그는 결혼 7년 만인 2021년 딸 오규아양을 낳았다. 그해 여름 도쿄올림픽에는 선수가 아닌 해설자로 나서야 했다. 딸에게 ‘규아가 태어나서 은퇴했어’라고 말하기 싫었던 김자인은 집에서 아기띠에 11㎏ 딸을 메고 턱걸이 하며 훈련했다.
지난 4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일주일 앞두고 손가락 인대가 부분 파열됐던 김자인은 주사를 맞고 출전한 끝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자인은 경기도 의정부시 자택 근처 어린이집에 딸을 등원 시킨 뒤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실내암장까지 약 8.6㎞, 50분간 뛰어서 출근했다.
김자인은 “신생아 때 젖병을 씻는 게 왜 이렇게 힘들던지. 클라이밍은 계획을 세울 수 없지만, 육아는 예측불가라 더 힘들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할 땐 ‘내 욕심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정상에서 밑을 내려다 봤을 때 아이가 보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어려운 도전이겠지만 내 꿈은 올림픽 출전”이라고 했다. 또 그는 “규아야. 엄마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낼 테니까, 파리올림픽에서 ‘주먹 쾅(파이팅)’하자”고 했다.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에 도전하는 김자인은 14일부터 프랑스 브리앙송에서 열릴 월드컵을 준비한다.
김자인처럼 놀라운 스포츠 선수이면서도 엄마인 이들은 또 있다. 테니스 선수 엘리나 스비톨리나(29세·우크라이나)는 지난해 5월 딸 스카이를 낳은 뒤 올해 5월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스트라스부르 인터내셔널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윔블던 8강에도 올랐다.
2020년 축구선수 남편 사이에서 딸 찰리 엘레나 카라스코를 출산한 알렉스 모건(34)은 미국여자축구대표팀 간판 공격수다. 지난 2월 쉬빌리브스컵 우승을 이끌었고, 이번달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개막하는 여자월드컵에 출전해 개인 3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인스타그램에 딸과 찍은 사진을 자주 올리는 그의 팔로워 수는 1000만명이 넘는다.
2018년 골프 코치 남편 사이에서 딸 체스니를 낳은 스테이시 루이스(38세·미국)는 2020년 미국여자골프투(LPGA) 레이디스 스코틀랜드오픈에서 연장 승부 끝에 우승했다. 당시 루이스는 “딸이 태어나고 잠도 잘 못 자고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딸이 내게 인내심을 가르쳐줬다. 대회 도중 딸이 좋아하는 노래 ‘Shake it off(떨쳐버려)’를 흥얼거렸다”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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