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못가고 가게 지킨다" 극한호우 쏟아진 상도동의 밤

박수림 2023. 7. 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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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작년에 폭우사망, 올해엔 시간당 72mm 폭우... 주민들은 "물막이판 아직도 못 받았다"

[박수림 기자]

 지난해 폭우로 사망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시장 일대. 이 지역 인근에 11일 오후 한때 시간당 72mm의 비가 쏟아졌다.
ⓒ 박수림
  
"○○아 이리로 와! 거기 있으면 안 돼!"

아이 둘과 함께 시장을 찾은 정아무개씨가 다급히 소리쳤다.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시장 사거리. 10분 가량 쏟아진 비에 흙탕물이 차오르면서 순식간에 일대가 마비됐다. 사거리를 건너려던 주민 20여 명은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했고, 인근 상인들은 급하게 물막이판을 설치하느라 분주해졌다.

성대시장 일대는 지난해 8월 내린 폭우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당시 성대시장 옆 골목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에서 50대 여성 A씨가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했다(관련 기사 : 반지하 발달장애인 사망 또 있었다... "고양이는 살았는데" https://omn.kr/207tk).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사고가 난 골목 일대를 다시 찾았다. 사고 지점 맞은편 반지하 주택은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이 집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을 돌본다는 요양보호사 A씨는 "이렇게 비가 많이 와서 너무 걱정된다. (골목을 보니) 집집마다 칸막이(물막이판)를 쳐뒀더라"고 말했다.

"물막이판?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해 폭우로 사망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골목. 반지하 주택에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11일 오후 한때 이 지역 인근에 시간당 72mm의 비가 쏟아졌다.
ⓒ 박수림
 
사고 지점 인근 골목에 위치한 주택의 절반은 지난해와 다르게 '동작구'라고 적힌 물막이판을 설치해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나머지 주택 절반은 물막이판을 대문 옆에 세워둔 채 설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후 3시께 폭우가 쏟아지자 근처에 있던 상인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몇몇은 입구 옆에 뉘여놓은 물막이판을 입구에 설치했다. 물막이판을 설치하던 상인 B씨는 "물막이판과 바닥 사이에 틈이 생겼다"며 옆에 있던 동료를 향해 "신문지를 챙겨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처에서 14년째 가게를 운영 중인 상인 강아무개씨도 "(물막이판으로)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오후 3시 45분께, 성대시장 사거리에 흙탕물이 차올랐다. 아이 둘을 데리고 길을 건너려던 상도동 주민 정아무개씨는 "작년 폭우 때도 이 사거리부터 물이 차올랐다"면서 "애들이랑 같이 나왔는데 어떡하냐"고 말했다.

건너편에서 자녀의 손을 잡고 억지로 길을 건너던 또 다른 주민 권아무개씨는 "비가 더 내리기 전에 빨리 집에 가야겠다"면서 "집 앞에 주차한 차를 옮겨야 한다"고 걸음을 재촉했다. 장화를 신고 있던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난 신발에 물이 다 들어갔어. 집에 빨리 가자"고 투정을 부렸다.
 
 지난해 폭우로 사망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시장 일대. 이 지역 인근에 11일 오후 한때 시간당 72mm의 비가 쏟아지면서 일대가 마비됐다. 물막이판이 제대로 비를 막지 못하자 상인들이 신문까지 덧대며 침수를 막고 있다.
ⓒ 박수림
근처 반지하 상가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지난해의 아픔을 떠올렸다. 박씨는 "작년 이맘때 아주 개판이었다. 가게를 작년 4월에 오픈했는데 넉 달이 채 안 돼서 폭우가 내려 (가게) 천장까지 물이 차올랐다"면서 "지난해에 동작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확정이 됐는데, 피해 정도와 상관없이 반지하든 지상이든 보상금이 똑같았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같은 자리에서 15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아무개씨도 "아, 올해 (날씨가) 또 이러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작년에 허리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로 가게가 다 잠겼다"면서 "정부 보상금은 조금이었다"고 불만을 토했다.

이날 비가 가게 안으로 들이닥치기 직전이었다던 문아무개씨도 "작년에 물이 골반까지 들어왔다"면서 "가게 안쪽까지 피해가 컸다. 작년에는 물건이 바깥으로 떠내려갔다"고 털어놨다.

"비만 오면 자다가 놀라 일어나"
 
 지난해 폭우로 사망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시장 일대. 이 지역 인근에 11일 오후 한때 시간당 72mm의 비가 쏟아졌다.
ⓒ 박수림
 
이날 오후 3시 55분께, 비가 다소 잦아들고 주민센터 직원들의 하수구 청소를 진행하자 일대 흙탕물은 어느 정도 정리됐다.

오후 4시 도착한 재난문자에는 상도동 바로 인근인 신대방1동에 "시간당 72mm 이상의 강한비로 침수 등이 우려된다"고 적혀 있었다. 발신자는 기상청. 코로나 등으로 익숙한 행정안전부가 아니었다. 기상청은 올해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1시간 강수량이 72㎜를 넘는 경우에는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기로 했다. 상도동을 비롯한 신대방동 등 몇몇 곳이 동작구 내에서 극한호우 재난문자를 수신받았다. 

앞서 만난 문씨의 가게에는 물막이판이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물막이판을 신청했는데 대기가 길어서 그런지 열흘째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또 그는 "(구청이든 주민센터든) 배수구 청소를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면서 "얼마 전 큰길에는 새로운 배수구를 놓는 걸 봤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물이 다소 빠진 뒤 기자와 다시 만난 박씨는 "지금도 비만 오면 자다가도 놀라서 일어난다"면서 "오늘도 비가 와서 하루 종일 가게 밖에 서 있었다. 잠깐 오는 비에도 이 난리인데 어떻게 집에 가겠나. 오늘은 집에 가지 않고 밤새 가게를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폭우로 사망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골목. 이 지역 인근에 11일 오후 한때 시간당 72mm의 비가 쏟아졌다.
ⓒ 박수림
 
 지난해 폭우로 사망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시장 일대. 이 지역 인근에 11일 오후 한때 시간당 72mm의 비가 쏟아졌다.
ⓒ 박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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