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감상, 장애인·비장애인 모두가 평등한 게 중요”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강 남부 사우스뱅크의 옛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2000년에 문을 연 테이트모던은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이 찾는 도시 재생의 상징적 장소다. 내셔널갤러리가 회화 컬렉션 위주인 것과 달리 테이트모던은 회화, 영상,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영국 현대미술의 심장이기도 하다. 그런 테이트모던의 예술 콘텐츠를 총괄하는 아트 프로그램 디렉터 캐서린 우드를 지난 6월 중순 테이트모던에서 만났다. 그는 2002년 테이트모던에 입사해 ‘더 큰 스플래시: 퍼포먼스 이후의 회화’ 등 주요 전시를 기획하며 큐레이터 경력을 쌓았고, 2022년 9월 현재 직책에 올랐다.
우드는 취임 당시 인터뷰에서 “예술가 및 관객을 통해 배우며 미술관의 진화에 대해 탐색하겠다. 사람들은 테이트모던에서 예술을 접하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에게 테이트모던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없애는 포용적 예술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물어봤다.
-테이트모던이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를 배려하는 다양성 정책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우리는 예산 일부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공공기관이다. 제가 아는 바로는 영국 국민 10%가 장애를 갖고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들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고자 노력한다. 테이트모던은 개관 때부터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accessible) 장소로 탄생했지만 이후 20년이 넘는 역사에서 그런 접근성 측면에서 많이 발전해 왔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접근하는게 가능하지 않은 전시라면 전시 개최 여부를 다시 고민할 정도로 전시에서 다양성을 추구한다.”
-‘접근가능하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측면만을 말하는가, 철학적인 개념까지 포함하는가.
“좋은 질문이다. 철학적인 고민도 하지만, 처음에는 아무래도 물리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와 자막 서비스, 시각 장애인을 위한 터치 투어가 그런 예다. 하지만 우리도 계속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시를 기획하고,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지금 하고 있는 게 옳은 방향인지 고민하며 배우는 과정에 있다. 배우면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009년 터바인홀에서 한 폴란드 현대 조각가 미로슬라프 발카의 전시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있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들어간다. 작가는 원래 관객들이 걸어가는 것으로 전시를 구상했지만, 우리 큐레이터들은 휠체어를 타고도 관람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휠체어 관객들이 밖에서 볼 수 있긴 했지만, 자신들은 걸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전시 내용을 조금씩 조정해가면서 배워나가는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전시에서 얻은 교훈이 새 전시에 적용된 사례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경험을 하는 게 가능하도록 전시를 하려고 한다. 예를 들겠다. 우리는 미국의 작고 작가 마이크 켈리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켈리의 작품 중에는 조각 속으로 관람객이 기어가면서 체험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기어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전시 방식을 바꿨다. 한 관람객이 조각 작품 속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촬영해서 이를 영상으로 보여주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한 전시를 두고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은 이 전시를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직도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평등한 감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배우면서 나아가고자 한다.”
-또 다른 예가 있나.
“최근에는 자폐 등 발달장애가 있는 관람객을 위해 새로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 아티스트 중에 자폐가 있는 분이 있어 그에게 가이드 개발을 요청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자폐아의 경우 앞으로 경험할 것에 대해 불안감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통상은 문자로만 전시 안내를 하지만 이들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전시장 안에 들어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어떤 경험을 할지에 대해 공간 배치 등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장애·비장애의 구분을 없애는 포용적 예술의 실천적인 노력을 관람객 차원에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다양성 정책은 어떻게 추구되고 있는가. 한국에서는 윤석열정부 들어 소장품 정책뿐 아니라 전시에서도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들의 구분을 없애는 정책을 권장하고 있다.
“변화는 더디지만 계속 되고 있다. 장애가 있음에도 성공하고 유명해진 작가들이 있다. 잉카 쇼니바레, 라이언 갠더 등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가 있지만 개념적인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장애가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장애 그 자체가 이들의 예술 세계를 결정하거나 작품 안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성공한 작가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장애 작가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냥 작가로 언급할 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 아이들인 10대들만 봐도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장애 선수들의 의족, 의수 등을 굳이 장애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 청소년 세대는 장애 선수들이 의족과 의수가 있어 더 파워를 가지고 빨리 달릴 수 있는 슈퍼 히어로 같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세대에게 비장애중심주의는 사회적 편견일 뿐이다. 디지털 세대의 생각이 반영되면서 우리 사회는 더 포용적으로 변하고, 다양성이 구현되는 방향으로 간다. 또 많은 활동가들이 활동한 덕분에 장애인들의 접근성도 좋아지고 장애인에 대한 생각도 정상화되고 있다. 장애인의 접근성 문제가 해소되면서 장애·비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전시하고 공연하는 여지도 커졌다.”
-그런 공연을 테이트모던에서 한 사례가 있나.
“(1960∼70년대 미국 포스트모던 댄스 운동의 창시자로) 세계적인 안무가인 트리샤 브라운의 댄스를 사용한 프로젝트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트리샤 브라운이 안무한 오리지널 버전과 캔두코 댄스 컴퍼니가 장애인 무용수용으로 각색한 새로운 버전을 함께 무대에 올렸다. 오리지널 버전이 오히려 클래식하고 우아했다면 휠체어, 지팡이를 사용하는 장애 무용수들이 참여한 캔두코 버전의 춤은 1960년대 뉴욕에서 무용과 일상을 접목하려했던 포스트모던 댄스의 전위성을 더 잘 살려내는 것 같았다.”
-장애인 예술이 전체 현대 미술에 끼치는 영향은 뭐라고 생각하나.
“장애인 예술가들은 나, 그러니까 우리의 인식을 확장한다. 그들의 경험 자체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준다. 좀 전에 언급한 (런던의 현대 무용단인) 캔두코 댄스 컴퍼니의 경우 휠체어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춤 언어를 개발했다. 몸이 아니라 휠체어라는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에 눈뜨게 하고 예술의 모더니티(현대성)를 확장해간다.”
런던=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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