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 딸의 '비밀'
[이유정 기자]
▲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스틸 이미지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중국계 소녀 메이는 이제 막 13살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친구의 쪽지도 마다할 만큼 열심히 공부한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고 성적도 늘 좋은 편이다. 뭐든 열심히 하고 열정적인 메이를 괴짜같이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녀에겐 늘 좋은 친구들이 있다.
학교가 끝나면 메이는 친구들과의 약속도 마다하고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와 집안일을 돕는다. 가업인 사원을 운영하는 일이다. 메이의 선조인 선이와 그녀가 돌본 레서판다를 기리는 사원이다. 부모님을 도와 사원 일을 마치고 나면 가족과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한 후 잠자리에 드는 바른 생활 어린이다.
이웃들은 메이를 정말 착한 아이라며 칭찬하고, 엄마도 메이에게 요즘 아이들과는 다르다며 늘 자랑스럽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메이는 마음속에 늘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녀도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수학을 좋아하고 공부를 잘하긴 하지만 시간을 들여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음악이나 운동도 썩 잘하는 편은 아닌데 말이다.
엄마의 생각처럼 자신이 탁월한 능력을 지녔고 또 대단히 똑똑하지도 않다는 걸 메이는 알고 있다. 많은 부모의 착각 중 하나가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성장해 지금에 이르는 것까지 지켜봤으니 당연히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 가장 알기 어려운 게 바로 아이의 마음이다.
메이는 엄마의 말이면 뭐든 잘 듣는 아이였지만, 엄마의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엄마의 통제가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 부담과 압박이 극에 달한 어느 날 아침, 메이는 레서판다가 되고 만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거대한 레서판다 말이다. 왜, 무엇이 메이를 레서판다로 바꿔놓았을까.
영화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의 스물다섯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바오>의 도미 시 감독이 연출했다.
도미 시 감독은 <바오>에서 극단적인 연출로 아이를 과보호하는 부모의 성향을 보여 줬는데,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에서도 부모와 아이 관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부모가 아이한테 당연한 듯 가지는 기대와 성취, 유대감과 기대감을 다루는 한편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를 레서판다로 변한 주인공으로 표현해 공감을 얻었다.
▲ 영화 <메이의 새빨간 비밀> 스틸 이미지 |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부모는 아이의 학습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어떤 양육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아이의 발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학령기 아이의 삶의 만족도가 굉장히 낮은 편이며 학업 스트레스와 부담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가 전체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데는, 가족 중심 사회에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는 게 효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테다. 영화에서 메이를 중국계 소녀로 정한 데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기대는 당연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갖는 교육적 관심과 아이의 교육에 갖는 부모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용어로 '성취압력(Parental Achievement Pressure)'이란 말이 있다. 성취압력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성취 지향적인 성취압력은 아이의 높은 성취를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높은 기대로 아이가 학습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메이가 수학을 비롯해 여타 과목에서 자신감을 갖고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취압력이 대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에는 메이의 엄마가 그랬듯, 대부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통제적이거나 과잉기대가 있는 경우다. 통제적인 성취압력은 아이를 향한 높은 기대와 함께 생활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양육 태도에서 비롯된다.
메이는 가장 친한 친구 3명과 함께 인기 아이돌 그룹 포타운의 팬을 자처한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포타운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만큼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에겐 말할 수 없다. 물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는 것도 말할 수 없다. 이성을 좋아하는 것도 아직은 안 된다고 한다. 엄마는 그런 모든 것을 저급하다고 하면서, 친구들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메이는 엄마에게 이 모든 걸 비밀로 해야 한다.
이렇듯 생활을 통제하는 한편 기대를 한껏 표현하는 걸 '통제적 성취압력'이라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는 부모가 지나치게 통제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느끼면 조절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학업 동기를 잃을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메이의 엄마는 메이를 향한 관심과 걱정이 너무 큰 나머지, 학교에 간 메이를 몰래 지켜보거나 친구들과 공부 모임을 한다는 메이를 찾아가기도 한다. 결국 메이는 성적이 떨어지고 시험지를 침대 밑에 숨기기도 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통제만큼 위험한 게 바로 '과잉기대'다. 아이의 능력에 비해 부모의 기대가 과도하게 높은 경우다. 아이의 현재 상태와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최고의 결과만 요구한다. 아이가 실현하기 힘들 만큼 비현실적인 기대는 심리적인 좌절을 안겨준다. 이런 경우 아이는 심리적 부적응이나 중독, 공격성 등의 문제행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몇 해 전, TV 육아 프로그램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앉아있어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인지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때 전문가가 엄마에게 "어느 정도면 아이가 잘한다고 생각할 것 같냐"며, 구체적인 반 등수와 시험 점수를 물었다. 엄마는 반에선 5등 안에 들었으면 좋겠고, 시험에선 평균 85점 이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반에서 꼴등에 가까웠다. 전문가는 아이의 현재 상황에 비해 너무 비현실적인 기대이며, 어머니는 학창 시절에 반에서 5등 안에 들었는지 물었다.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기 결정성을 길러주는 게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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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적이거나 과잉기대를 하는 등의 성취압력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거나 성적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부모의 성취압력은 아이의 '자기 결정성'을 위협하고 발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기 결정성이란 인간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성장하고자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정도를 말한다. '동기'와 유사한데, 외부의 보상 없이도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내재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결정성이 높을수록 당연히 공부를 잘한다.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율성과 유능성, 관계성의 기본 욕구를 가지고 있고 또 욕구를 충족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성취압력은 자녀로 하여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 또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상관없이, 부모의 기대와 통제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자기 결정성을 약화시킨다. 영화에서 메이는 자신의 기분이나 좋아하는 걸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다. 엄마의 기대를 실망시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통제하지 않고도 아이 스스로 잘하게 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그러려면 자기 결정성을 길러주는 게 답이다. 아이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하고 아이의 선택과 욕구와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를 향한 진짜 관심은,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저 유명한 이솝우화의 매서운 북서풍과 뜨거운 태양의 대결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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