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 스웨덴, 나토 합류…러시아 앞 발트해 '서방 연못' 된다

이승호 2023. 7. 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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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오른쪽)가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열린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웨덴이 200년 넘게 유지하던 중립국 전통을 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32번째 회원국으로 합류할 전망이다. 1년 2개월 동안 꿈쩍 않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기로 10일(현지시간) 전격 합의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계기로 국제사회 힘의 균형이 바뀔 거란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중국의 반대에 막혀 제 구실을 못하는 가운데, 나토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의 회담을 중재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안을 의회에 전달하고, 비준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회동 뒤 공동성명에서 구체적인 의회 상정 시한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스톨텐베르그 총장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능한 한 빨리 이뤄지도록 약속했다”고 말했다.


스웨덴, 200년 중립국 전통 버렸다


지난 10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나토 정상회의장에 스웨덴(오른쪽), 나토(가운데), 튀르키예(왼쪽) 국기가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이로써 답보 상태였던 스웨덴의 나토 합류에 청신호가 켜졌다.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 200여년 동안 지켜온 중립국 지위와 ‘군사 비동맹주의’ 전통을 깨고 지난해 5월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 4월 회원국이 된 핀란드와 달리 스웨덴은 튀르키예와 헝가리의 반대로 나토 가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나토 회원국의 되기 위해서는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튀르키예가 가입 지지로 돌아섰고, 헝가리도 동의 절차를 밟을 것을 시사하면서 걸림돌이 사실상 제거됐다. 11일 페테르 씨야트로 헝가리 외무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스웨덴 나토 가입) 비준 절차를 완료하는 것은 이제 단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절차 진행 의사를 밝혔다.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니아 전쟁이 촉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우려해 국제 규범을 무시한 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나토 팽창을 촉진했다.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스웨덴이 안보 불안을 느끼면서 나토 가입을 통해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스웨덴의 나토 합류에 대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엄청난 전략적 실수였음을 확인해준다"고 말했다.


“발트해, '나토 연못' 된다”…러시아 긴장


지난해 5월 스웨덴 공군의 JAS 39 그리펜 전투기가 발트해의 고틀란드 섬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웨덴이 나토에 합류하면 유럽의 안보 지형이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나토는 추가로 1600㎞ 이상의 발트해 해안선을 품게 된다. 러시아로선 자신의 영토 인근인 발트해 인접 국가 전체가 나토 회원국이 된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이언 브레진스키 선임연구원은 “스웨덴이 합류하면 발트해가 ‘나토의 연못’이 된다”며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유럽 중북부에 군사적 안정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군력이 강한데다 전투기도 자체 생산해 수출하는 스웨덴의 합류는 나토에 실질적인 군사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WSJ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4월 초 합류한) 핀란드와 함께 전투기·탱크 수백 대, 병력 수만 명 등 상당한 군사력을 나토에 더해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영옥 기자

국제 사회에서 나토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이후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제대로 된 결의도 어려운 가운데, 세계 최대 군사동맹체인 나토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될 수 있어서다. 여기에 스웨덴과 핀란드가 중립국으로서 오랜 기간 러시아와 지내며 획득한 정보도 나토의 자산이란 평가도 있다. WSJ는 “두 나라는 수십 년 동안 러시아와의 ‘까다로운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러시아의 사고방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완충 지대'가 줄면서 서방 대 반(反)서방의 대결이 한층 치열해지는 신(新)냉전체제가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합류로 현재 유럽 내 군사적 중립국을 표방하는 나라는 스위스·오스트리아·아일랜드·몰타 정도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도 최근 독일 주도의 유럽 영공방어 계획(ESSI)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해 사실상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 길이 열린 것에 대해 러시아는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1일 “러시아의 안보에 명백히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했을 당시와 유사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 것에 반발해 지난 1일 핀란드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출장소를 폐쇄하고 러시아에 있는 핀란드 총영사관 출장소 운영 승인을 취소했다. 10월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핀란드 총영사관 운영 승인도 취소하기로 했다.


또 통한 에르도안의 '어깃장 외교'


한편 이번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둘러싸고 에르도안 대통령의 밀당 외교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 정부가 쿠르드노동자당(PPK) 등 튀르키예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세력을 용인한다는 빌미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막아왔고, 당일 오후까지만 해도 튀르키예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선결 조건으로 거론하면서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다가 막판에 선회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이번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어깃장 외교’를 통해 이익을 챙겼다고 평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국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회원국들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장일치가 필요한 나토 의사결정에 번번이 제동을 걸어 ‘나토의 이단아’란 별명을 가지게됐다.

이번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의 길을 열어주면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실리도 챙겼다. 이날 회담에서 스웨덴은 EU 회원국으로서 튀르키예의 가입을 적극 지원하고, EU-튀르키예의 관세 동맹 개편, 비자 면제 조치 등을 돕기로 합의했다. 튀르키예가 요구해온 스웨덴 내 반튀르키예 단체에 대한 지원 불가 입장도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튀르키예는 숙원이었던 200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F-16 전투기 현대화 및 추가구매란 소득을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튀르키예에 F-16 전투기 수출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유럽과 대서양 방위 강화를 위해 튀르키예와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11일 바이든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F-16 판매와 관련한 진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F-16 구매와 스웨덴 나토가입과 관련해) 미국과 튀르키예 간에 이면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가 당장은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이번 합의를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원한 가장 큰 성과는 F-16 구매를 확정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대한 지지 의사만 표명하고 실제 공은 의회로 넘긴 만큼, 합의가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다. 크리스토퍼 스칼루바 전 미 국방부 유럽 및 나토 정책 책임자는 “에르도안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 결정을 의회에 보냈을 뿐, 아직 완료된 거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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