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월 10명 뿐이라도, 24시간 응급 분만 포기 안 한 산부인과 의사

김나한 2023. 7. 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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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까지 없어지면 분만 하는 병원이 없으니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지난해 분만취약지역 지원 사업에 신청하고 서울 가서 브리핑하고 지원금을 타서 분만을 계속 할 수 있게 됐죠."

류춘수 논산 모아산부인과 원장. 류 원장은 11일 인구의날을 맞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분만취약지에서 20년간 24시간 응급분만 체계를 유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류춘수(56) 모아산부인과 원장은 1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년 동안 병원을 운영하면서 지난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모아산부인과는 충남 논산시 유일의 365일 24시간 분만 가능한 병원이다. 병원에 아이 낳으러 오는 산모 수가 크게 줄면서 적자를 면하기 어려워졌다. 해마다 산모가 줄어들더니 지난해엔 분만 진료를 포기하고 외래만 봐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논산시에서 아이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산부인과라는 생각에 분만을 끝내 접지 않았다. 류 원장은 20년간 분만취약지역을 지켜온 공로를 인정 받아 인구의날인 이날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대전 충남대 의대를 졸업한 류 원장은 원래 논산에서 병원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한다. 20여년 전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치고 논산백제병원에 잠시 부임한 게 계기가 됐다. 류 원장은 "당시 시내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의사 선배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선배가 하던 병원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이어받았다”고 했다. 2003년 병원 이름을 모아산부인과로 바꾸고 20년 간 24시간 응급 분만을 이어가고 있다. 류 원장이 영입한 후배 두 명까지 원장 3명이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

수술 중인 류춘수 논산 모아산부인과 원장.


류 원장은 지난 20년 간 많을 땐 한 달에 60건 정도 분만을 했다. 논산시에 따르면 2017년만 해도 논산의 분만 건수가 1년에 200여 건 정도는 됐다. 하지만 지난해 논산의 관내 분만 건수는 140명으로 줄었다. 열 두 달로 나누면 한 달 10명 수준에 그친다. 저출산으로 관내 출생아 수 자체가 2017년 659명에서 지난해 408명으로 크게 줄어든데다, 그나마 65%는 수도권이나 대도시 등으로 이른바 '원정 분만'을 떠난다. 논산시에 분만을 하는 병원도 모아산부인과만 남았다. 지난해에는 병원의 한 달 분만 건수가 10건 아래로 떨어졌다. 류 원장이 분만을 그만해야 하나 고민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는 "50명 분만하다가 10명으로 줄면 수입이 5분의 1로 줄어드는데 응급 분만을 이어가려면 인력을 크게 줄일 수는 없다. ‘이대로는 진짜 안 되겠다, 우리도 이제 분만을 접고 외래만 해야 하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분만 취약지 분만 산부인과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이 되며 분만을 더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사정이 어려워도 모아산부인과가 분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다. 모아산부인과를 찾는 이들 중엔 다문화 가정 산모가 많다. 논산의 다문화 출산율은 지난해 12%에 달했다. 류 원장은 “논산 옆에 세종도 있고 대전도 있다. 거리가 멀지 않고 병원도 신설되고 하니까 논산 산모의 3분의 2는 그쪽으로 간다”며 “하지만 취약ㆍ소외 계층 산모들은 제가 안 하면 분만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몸이 고되고 적자가 나도 24시간 분만을 유지하려는 이유다. 다문화 산모 중 진료·수술비를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병원이 직접 논산시 의사회의 지원을 요청해 분만 진료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류 원장은 국민훈장 수상에 대해 "20년 동안 지역사회에서 묵묵히 일해왔는데, 우리 사회가 격려해주니 감사한 마음 뿐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인구의날 행사에선 류 원장 외에도 인구 문제에 기여한 개인과 기관에 근정포장(1점)·대통령 표창(6점)·국무총리 표창(7점)·보건복지부 장관표창(50점)이 수여됐다. 근정포장 수상자로는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선정됐다. 최 교수는 남성의 육아휴직 확대를 위한 정책 연구 및 기고 활동으로 남성 육아휴직의 효과를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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