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팬심 담긴 이순신 생애…"생략된 난중일기 내용 담았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이순신 장군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재임 20년 차인 1795년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 각신들에게 이순신의 생애를 집대성한 책을 만들라고 명한다. 그렇게 규장각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 14권으로 된『이충무공전서』를 펴냈다. 책이 완성됐을 때 정조는 손수 비문을 지어 책 머리에 실었다.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의 한글 완역본이 34년 만에 재출간됐다. 지금까지 이 책의 한글 번역본은 사학자이자 문학인이었던 고(故) 이은상 선생(1903∼1982)이 출간한 1960년 버전이 유일했다. 현존하는 역주본은 이 선생 사후인 1989년 성문각에서 고인의 원고를 정리해 양장본(서양식으로 책의 겉모양을 꾸민 책) 상·하권으로 펴낸 것이다.
34년 만에 새 완역본을 펴낸 이민웅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는 11일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3년에 걸친 작업이 끝나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 석좌교수 외에도 정진술 전 문화재전문위원, 양진석 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관 등 전문가 7인이 머리를 맞대고 2년간 번역, 1년 간 편집 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나온『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태학사) 총 4권의 분량은 무려 1784쪽. 각주만 5069개에 달한다.
이 석좌교수는 "이번에 나온 완역본은 1960년·1989년 버전의 지명·용어 오류를 수정하고 영웅주의 사관에서 탈피해 사실적으로 기술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책이 명량해전의 승리를 '이순신의 신출귀몰한 능력 덕분'이라고 해석했다면, 이번에는 해전의 주요 경과를 분석하고 무기 체계나 조선 선박의 우수성을 설명한 자료를 각주로 붙였다"는 것이다.
대표 번역자인 이 석좌교수는 2002년 임진왜란 해전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순신 전문가다. 대구가톨릭대가 2021년 전국 최초로 석·박사 과정의 '이순신학과'를 만들었을 때 초대 학과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난중일기』 번역이 가장 즐거웠다"고 했다. 『이충무공전서』는 임금이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편지, 이순신 장군의 시와 글,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 『난중일기』로 널리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일기, 이순신을 언급한 문헌 기록 등을 총망라했는데 그중 『난중일기』 번역 작업이 가장 재밌었다는 것이다.
이 석좌교수는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술을 마시는 내용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면서 "육지에 발 붙이지 못하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술을 마신 후 방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대청마루에서 쪽잠을 잤다는 이야기, 술을 먹다 탈이 나서 독한 위장약을 먹어야 했던 기억, 주사를 부리는 부하들에 대한 언짢은 감정 등이 가감 없이 담겼다"며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리더로서의 일상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한 글"이라고 했다. "군 최고 지휘관이 전쟁 중 매일 쓴 일기가 후대에 전해지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는 것이 이 석좌교수의 설명이다.
『난중일기』원본을 번역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이 석좌교수는 "『난중일기』 원본의 분량이 100이라면, 『이충무공전서』에는 60 정도만 담겨있다"며 "이번 책에는 생략된 『난중일기』의 내용을 담았고, 그 출처를 모두 구분해 수록했다"고 했다.
『이충무공전서』의 완역본이 재출간 되기까지 왜 34년이나 걸렸을까. 그는 "국내 역사학자 중 전쟁사를 전공한 이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의 역사학자 중 30% 이상이 전쟁사학을 전공한 것과 달리 한국의 역사 연구는 정치·사회 연구에 치우쳐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전쟁사는 한 나라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사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군 출신 연구자들의 한국전쟁 연구 외에도 중세와 근대의 전쟁을 연구하는 다양한 신진 학자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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