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엔 핵실험 어렵고…" 돌연 EEZ 꺼낸 北, 억지주장 속내

이근평, 김하나 2023. 7.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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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정찰기가 북한의 영공과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침범했다는 북한의 억지 주장에 대해 군 당국은 즉각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군은 연이은 북한의 위협이 북한 '내부 단속용'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동시에 만에 하나 북한이 실제 군사 행동을 벌일 경우에도 대비하는 모습이다.

북한은 11일 새벽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지난 10일 미 공군전략정찰기가 5시 15분부터 13시 10분까지 강원도 통천 동쪽 435㎞~경상북도 울진 동남쪽 276㎞ 해상 상공에서 조선 동해 우리 측 경제수역상공을 8차례에 걸쳐 무단침범하면서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합동참모본부는 즉각 “미국도 작전할 수 있는 국제수역과 공역에서 안전하고 책임 있게 작전한다는 입장 표명이 있었다”며 “북한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배타적경제수역은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가 있는 곳"이라며 "그러한 곳을 비행했다고 해서 그걸 '침범'했다고 표현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2022년 8월 공개 연설을 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EEZ는 연안에서 200해리(370.4㎞)에 이르는 구간이다. 연안에서 12해리(22.2㎞)까지의 영해와 그 상공을 뜻하는 영공과는 다른 의미다. EEZ에서는 국제법적으로 외국 선박과 항공기의 항행 및 비행의 자유가 대체로 보장된다.


어제는 영공, 오늘은 EEZ…"트집 자인한 셈"

북한은 지난 이틀간 세 차례에 걸쳐 미국 정찰기를 문제 삼는 성명을 냈다. 북한은 이날 성명에 앞서 전날(10일) 오전엔 미 정찰기가 자신들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고, 같은 날 밤에는 미 정찰기가 해상 군사분계선을 넘어 경제수역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군 안팎에선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을 놓고 무력 시위를 벌일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해당 시간대 미 정찰기 활동에 대해 언제는 영공 침범을 주장했다가 스스로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이제는 EEZ로 화제를 돌려 정당화하려 한다”며 “결과적으로 북한 스스로 트집 잡고 있다는 걸 자인한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비행 중인 RC-135S 자료사진. 미 공군

북한은 1977년 “EEZ에서 외국 선박·항공기가 사전승인 없이 촬영, 조사 등을 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타국의 군사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EEZ에서의 활동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아왔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그간 문제 삼지 않았던 EEZ를 돌연 꺼내든 배경에 대해 “당장은 북한의 내부적 단속에 목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도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압박 수단 소진한 北, 국면전환 카드?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실상 군사적 압박 카드를 소진한 북한이 국면전환을 위해 EEZ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 입장에선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걸로 보인다”며 “장마철이라 핵실험도 하기 어렵고, 탄도미사일 도발 역시 그간 많이 해와 효과가 썩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의 입장에선 군사적 긴장감을 높임으로써 내부 결속을 꽤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 상황이다. 북한은 오는 27일 '전승절'로 명명한 6·25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김정은이 지시한 과업인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내부 동요를 잠재워야 하는 시점이란 의미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이 한국을 사실상 패싱하고 미국만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모양새”라며 “대미 협상 테이블이 꽉 막힌 상태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의도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69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진행했다. 불꽃놀이와 항공육전병의 강하 기교, 전투기의 기교 비행, 드론쇼 등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노동신문

北 '오판' 대비…한·미 강경 대응 기조

다만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반복되는 무단침범 시에는 미군이 매우 위태로운 비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실제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북한은 전날 담화에서 1969년 EC-121, 1994년 OH-58 헬리콥터, 2003년 RC-135 등 미 북한이 실제 미군 자산에 대한 공격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이 수사적 위협을 넘는 실제 행동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망하다. 그럼에도 합참 관계자는 “한·미 당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필요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북한이 오판을 하게 될 가능성에 대비한 대응 체계가 마련돼 있음을 시사했다.

군 당국은 평시에도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이북 20~50㎞ 상공에 가상으로 설정해 놓은 ‘전술조치선’(TAL)을 넘을 경우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만약 북한이 미군의 정찰기에 대한 실제 공격을 가한다면 강경 대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미 정찰기를 향해 전투기로 대응할 경우 즉각 한·미의 압도적 공중전력이 투입된다. 또 장거리 지대공미사일 등을 동원해 미군 자산에 대한 격추를 시도할 경우 미국의 전면적 보복 조치도 배제할 수 없다. 군 당국자는 “상황 발생시 24시간 대기 중인 우리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해 긴급 전술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지상 대기 중인 미 전력도 가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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