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직업" 이라던 총리직 사임…마르크 뤼터 발목 잡은 것
13년 머물렀던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리더의 표정은 복잡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임을 공식화한 네덜란드 총리 마르크 뤼터 얘기다. 뤼터 총리는 이념 스펙트럼이 다른 4개의 정당의 연정을 이끌며 2010년부터 네덜란드의 최장수 총리가 됐다.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를 이끌 적임자로도 수차례 거론됐으나, 그때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네덜란드 총리)이 세계 최고의 직업"이라며 부인해왔다.
그는 네덜란드뿐 아니라 EU 내에서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잘 해내는 전략가로 평가됐다. 폴리티코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너무 앞서 나갈 경우 그를 부드럽게 제지하는 역할을 뤼터가 했다"며 "EU의 미래를 네덜란드에 유리하게 조각한 인물이기도 하다"고 호평했다.
그런 그의 발목을 잡은 건 난민 문제다. 그는 "가치관의 충돌을 좁히지 못했다"며 사임 의사를 네덜란드 빌럼 알렉산데르 국왕에게 전달한 뒤,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가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의 자유민주당(VVD)은 "난민 가족의 입국을 허용하되 매달 최대 200명으로 제한하며, 난민이 자녀를 데려오고 싶어할 경우 최소 2년은 경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진보 성향 정당들은 이에 반발했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뤼터는 "최고의 직업"을 스스로 그만두게 됐다.
그는 11월 치러질 선거까지 임시 총리로 일한 뒤, 정계를 떠나겠다는 입장이다. 향후 거취에 대해선 "잠시 숨 고르기를 한 뒤 복귀할 것"(로이터통신)이라거나 "정계를 은퇴할 것"(뉴욕타임스) 등의 전망이 엇갈린다. 그러나 그가 난민 문제로 사임한 것 자체가 네덜란드 정계의 불안정성을 뜻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사임은 네덜란드 역시 난민 등의 문제에서 분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뤼터가 꾸려왔던 13년 연정이 무너지면서 네덜란드 정계에도 큰 구멍이 생겼다"고 평했다.
뤼터는 중도보수 성향은 뚜렷하지만 소탈한 성품과 열린 자세로 주목받아온 정치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매입한 집에 아직도 거주하는데, 사과를 먹으며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이 대표적 이미지"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꿈은 피아노 연주자였지만 대학에선 역사학을 전공했고, 이어 사회학과 정치학에 관심을 가지며 VVD의 청년 기구에 몸을 담았다. 졸업 후엔 유니레버에서 일했으나 결국 정계에 진출했다. 장관으로 정무를 보다 의원직에 도전했고, 연정 합의 도출에 성공하면서 네덜란드의 얼굴로 13년 재임했다.
1967년생인 그는 결혼한 적이 없으며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는 "싱글이어서 완벽하게 행복하다"며 "너무 바빠서 연애를 할 겨를도 없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아버지의 죽음이라고 한다. 그는 "결국 우리에게 생은 단 한 번뿐이며, 인생은 리허설 없는 연극이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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