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향하는 K콘텐츠, 문화 감수성은 낙제점

이은호 2023. 7. 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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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시간 1위를 달리는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8~9일 방영된 7~8화에서 아랍권 문화를 왜곡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해서다.

글로벌 OTT를 타고 전 세계에서 각광 받는 K드라마가 문화 감수성에선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랍권 시청자들은 이 같은 설정이 아랍문화를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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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킹더랜드’ 방송 캡처.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시간 1위를 달리는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8~9일 방영된 7~8화에서 아랍권 문화를 왜곡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해서다. 제작진은 “특정 국가를 염두에 둔 인물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아랍권 팬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영화·드라마 비평 사이트 IMDB 내 평점은 2점 초반으로 수직 하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5만명 넘는 시청자가 최저점(1점)을 매겼다.

글로벌 OTT를 타고 전 세계에서 각광 받는 K드라마가 문화 감수성에선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킹더랜드’는 아랍 왕자 사미르(아누팜 드라파티)를 등장시키면서 술과 여성을 탐하는 인물로 묘사해 도마 위에 올랐다. 호화로운 술집에서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으로 등장한 사미르는 극중 주인공 천사랑(임윤아)에게 반해 그에게 내내 추파를 던진다. 사미르가 천사랑과 전통혼례 체험을 하겠다고 하자, 구원(이준호)이 그를 속여 하인 분장을 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아랍권 시청자들은 이 같은 설정이 아랍문화를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을 이슬람교 신자이자 사우디인으로 소개한 한 시청자는 IMDB에 “제작진이 아랍 왕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굴욕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아랍권 시청자는 “아랍인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실제 아랍인은 하지 않는 음주 등 행위를 하도록 연출해 실망스럽다. 우스꽝스러운 고정관념에 따라 아랍 왕자 캐릭터를 표현했다”고 썼다. SNS에서도 “아랍문화를 왜곡했다” “제작진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그룹 노라조는 2010년 발표한 노래 ‘카레’가 인도와 힌두교를 희화화했다는 지적이 일자 10년 만에 사과했다. ‘카레’ 뮤직비디오 캡처

K콘텐츠가 외국 문화와 역사를 잘못 표현해 논란이 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ENA 드라마 ‘보라데보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기 배설물 위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한 컵의 물을 받아서 반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는 세수를 했다. 유리 조각으로 식판 뒤 얼굴을 보면서 면도도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건 생존의 문제”라는 대사를 썼다가 입길에 올랐다. 유대인들이 죽음 앞에서 존엄을 지키려 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인용이었다. 제작진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한 시각으로 언급했어야 했는데, 신중하고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tvN ‘작은 아씨들’은 베트남 전쟁을 언급하면서 “한국군 1인당 베트콩 20명을 죽였다”,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 영웅” 등의 대사를 내보내 현지에서 반발을 샀다. 베트남 넷플릭스는 ‘작은 아씨들’ 방영을 중단했다. 넷플릭스 ‘수리남’은 실제 국가인 수리남을 마약 밀매가 성행하는 부패한 국가로 묘사했다. 수리남 외교부가 이런 설정에 항의하면서 논란은 외교 문제로 번질 뻔했다. K팝도 예외는 아니다. 그룹 블랙핑크는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힌두교 신상을 소품으로 썼다가 종교적 상징물을 함부로 다뤘다는 비판을 받은 뒤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그룹 노라조는 2010년 공개한 ‘카레’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인도문화를 왜곡했다는 비판이 뒤늦게 일자 10년 뒤인 2020년 사과하기도 했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해당 에피소드가 전파를 탈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시대의식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촬영과 시사 등 제작 단계에서 제작진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 평론가는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 OTT로 유통돼 세계 곳곳에서 보고 제작진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아랍 왕자로 명시한 인물을 이렇게 희화화하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창작의 자유를 ‘뭐든 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제작진이 크게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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