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떠난다더니…"하이네켄·오레오 사면 푸틴 지지하는 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500일을 넘긴 가운데, 전쟁 초기 러시아에서 사업 철수를 약속했던 하이네켄, 필립모리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아직 러시아에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0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제프 소넨펠트 예일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다국적 기업의 러시아 내 운영 상황을 공개했다. 연구팀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약 1500곳 기업을 대상으로 러시아 철수·사업축소 상황을 추적·집계하고 있다.
소넨펠트 교수는 이날 CNN에 "자발적으로 러시아 사업을 축소한다고 공개 발표한 기업 일부는 여전히 러시아 사업을 계속해 약속을 어겼다"면서 "이들은 '전시 수익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회사 제품을 사는 소비자는 푸틴 정권에 전쟁을 위한 '연료'를 공급하는 셈이며 푸틴을 암묵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 맥주 기업 하이네켄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만인 지난해 3월, 하이네켄은 러시아를 떠나겠다고 발표해 찬사를 받았다. 당시 예일대는 하이네켄이 러시아와 ‘깨끗이 관계를 끊는’ 기업에 주는 최고 등급인 A를 부여했다.
그러나 16개월이 지난 현재 하이네켄은 러시아에 양조장 7곳과 직원 1800명을 두고 운영 중이다. CNN은 "전쟁 후에도 하이네켄은 러시아에서 신규 맥주 브랜드를 잇달아 출시했고 다른 맥주 브랜드 철수로 인해 생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일대는 이번 조사에서 하이네켄이 러시아 철수를 미루고 있다는 이유로 A에서 D로 등급을 크게 낮췄다.
하이네켄 측은 CNN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끔찍한 비극이다"면서 "우리는 러시아를 떠날 것을 약속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CNN은 하이네켄이 러시아 사업을 인수해줄 잠재적인 파트너를 찾아 지난 4월 러시아 당국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지만, 승인을 받지 못해 철수 작업이 보류됐다고 전했다.
오레오 쿠키로 유명한 몬델리즈도 지난해 3월 러시아에서 모든 비필수적 활동을 축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직원 3000명을 두고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일대 연구진은 특히 유럽 식료품 기업들이 몬델리즈 제품을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철수를 위한 구체적인 진전 없이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브 비누, 립톤티를 판매하는 유니레버도 러시아에서 필수품만 판매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이스크림 등 비(非)필수 소비재도 판매 중이라고 CNN은 전했다. 러시아를 떠나겠다는 기업들의 약속을 모니터링하는 단체 '모럴 레이팅 에이전시(MRA)'에 따르면 유니레버의 러시아 경제에 대한 지원 규모는 연간 7억1200만 달러(약 9256억원)로 추정됐다.
MRA 설립자인 마크 딕슨은 CNN에 "도브 비누가 러시아 탱크 구매에 충분할 만큼 생산된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비누가 매우 더럽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킷캣 초콜릿, 애완견 사료 퓨리나 등을 판매하는 네슬레도 철수 약속을 어기고 초콜릿 바, 사료 등을 여전히 판매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도 러시아에 남아있다. 필립 모리스는 러시아에 남은 다국적 기업 중에 최대 규모로 공장을 포함한 러시아 내 사업 규모가 25억 달러(약 3조 2500억원)로 추정됐다.
이밖에 맥도날드·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업체의 러시아 철수는 1년이 넘었는데 TGI 프라이데이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여전히 운영 중이라고 CNN은 전했다.
예일대 연구진은 다국적 기업의 러시아 철수를 계속 압박해 푸틴 정권이 압박을 느끼게끔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업 압박 운동은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인종 분리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시행되던 동안, 주요 서구 기업을 향해 "남아공에서 철수하라"는 압박 운동이 벌어졌던 것과 유사하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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