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위를 경제전문가로? 우려와 대안
[김진웅 기자]
▲ 지난 3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을 찾은 시민이 상담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
ⓒ 연합뉴스 |
10일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경제전문가로 채우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 매체는 "국민이 납부한 연금보험료를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가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 노동계 인사 등으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데 따른 것"이라며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기금운용위원에 자격 조건을 추가하는 방안 등 세부 내용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보도했다.
필자는 지속가능하면서, 윤리적인 연금제도 운용을 위해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반 ESG 그룹 투자 고려,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수립해야 한다. 둘째, 기금운용위원회 구성 인력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 셋째,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이다.
국민연금은 2039년 적자 전환, 2055년에는 소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이 마무리 돼 간다.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담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연금 고갈에 대비해 조세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기초연금의 가입자 확대와 보장성 상향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처럼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금은 사회보장제도이지, 경제 정책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는 연금 운용은 단순히 수익률만 따질 것이 아니라, 납세자들의 철학과 사회적 윤리, 시대상을 반영하여 투자·지속·운용하는 사회보장제도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보장제도를 전공하고, 국회 복지위에서 잠시나마 국민연금제도를 들여다본 나의 소견으로는 보다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먼저 국민들이 원치 않는 기금운용 즉, 비윤리적 투자 금지 기준(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수립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은 국민으로부터 징수한 사회보험료로 운용된다.
국민연금공단이 공시한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 현황은 2023년 4월말 기준 975.6조원에 육박해 연금기금운용에 있어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의 대원칙은 수익률을 창출해 장기적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법 제102조(기금의 관리 및 운용) 제2항에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 기금을 운용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 바에 따라서 보건복지부장관은 기금을 운용하라'는 의무사항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올 10월에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 대부분을 경제전문가로 채워넣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된다면 현재도 비윤리적 투자 금지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국민연금 운용 방식은 더욱 윤리적 도덕적 투자 방향을 고려하지 않게 됨에 따라 단순히 투자 운용회사와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사회보장제도라는 국민연금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고, 기금운용 의사결정이 오직 경제적 논리로만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연금기금은 수익을 볼 수 있겠지만, 기금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성장한 살상무기업체, 인권 유린 업체 등의 배를 불리는 것에 국민들은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 주요연기금 투자제한(감시) 기업 및 국민연금공단 투자 현황 ① |
ⓒ 김진웅 |
▲ 주요연기금 투자제한(감시) 기업 및 국민연금공단 투자 현황 ② |
ⓒ 김진웅 |
▲ 주요연기금 투자제한(감시) 기업 및 국민연금공단 투자 현황 ③ |
ⓒ 김진웅 |
둘째, 기금운용위원회 구성 인력 정수 확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의 투자 정책과 자산배분 비중 등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국민연금법 규정에 따라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이 맡는다. 여기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 차관 4명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1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해 총 6명의 정부 측 위원이 있다. 이 외에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관계전문가 2명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윤석열 정부의 기금운용위원회 구성 인력 개편은 관료 기준은 존치시킨 채 나머지 비 경제 영역에서의 대표들을 손 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비윤리적 투자 금지 기준을 수립함과 동시에 이를 잘 지키면서 기금운용을 하는지를 감시·견제할 수 있는 구성 인력은 확보해야 한다. 국민연금법 제정 당시 국민연금제도는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로서 기금 운용에 있어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투자 방향성, 수익성 증대, 자산 배분 기준 등을 논의하도록 했다.
다만, 현재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초저출산, 초고령사회, 기대수명 증가 현상에 직면하면서 기금운용에 대한 심각성이 더 두드러졌을 뿐이다. 사실, 연금특위에서는 기금운용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연금기금 운용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어, 불가피하게 조세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따라서 기금운용위원회 인력 구성에 경제 전문가를 조금 더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연금기금이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마법과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인력 정수를 현재보다 늘려서 경제전문가를 신규 투입함과 동시에 기존 견제 기능을 했던 각계각층의 관계자를 존치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이다. 매번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은 이념에 따라 투자 방향이나 지침이 변경된다. 실제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부당 합병 사건에서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합병 찬성표를 던졌던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게 690억원에 달하는 배상액과 법률비용 372억 외에 지연이자 등 포함하여 13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1:0.35 부당합병으로 인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저평가 해 삼성 총수일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병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국민의 지적이 계속 있었지만,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되지 않는 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엄청난 규모의 연기금은 늘 유혹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과거, 국민연금에 따라붙던 꼬리표는 '주총 거수기'였다. 국민연금이 우량기업의 최대 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서 주주로서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국민연금은 2018년도에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즉,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해 종전과는 다른 다소 파격적인 주주권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전인 2017년 12.9%에 그쳤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도입 이후 2018년 18.8%, 2019년 19.1%로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국민연금이 과거에 비해 적극적으로 주주로 있는 기업 활동을 감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는 결연해보이지만, 문제는 현실에서 그 감시가 원리 원칙에 따라 제대로 '독립적'으로 시행되느냐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은 탈피했지만 국민연금은 '연금 관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경영진 교체 시도와 정부 눈치보기식 의결권 행사가 이어진 결과다.
이에 캐나다연금(CPP),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스웨덴 연금(NDC)과 같이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해 정치적으로 기금 운용방향과 주주권 행사 기준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연금개혁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모든 것이 경제 만능주의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부디 이번 개혁도 연금기금의 지속 가능성과 국민 노후 보장 안정성 보장에 부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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