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증원 시도, 참으로 염치없다 [이기선 칼럼]
비례대표, 경력 살펴보면 제도의 취지와 관계없는 사람들
선거 앞두고 국민 현혹 후 상황 달라졌다고 뒤집기 다반사
현재 300명의 국회의원 과연 부족한 숫자인가?
여야는 지난 3일 원내수석부대표,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가 참여하는 ‘선거제 개편 협의체’를 발족했다. 김진표 의장은 이 자리에서 ‘7월 중순까진 선거법 협상이 마무리돼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선거제 개편은 각 정당의 이해가 걸려있어 쉽게 결론 나긴 어려울 것이다.
필자는 이번 협상을 지켜보면서 의원 정수를 늘리기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달 정개특위 소위원회에서는 3가지 선거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는데, 그중에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 비례대표 의석을 50석 늘려 현행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350명으로 증원하는 안도 포함돼있다.
국민의힘에서는 의원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에서는 비례대표 확대 등 의원 수를 증원하자는 입장이다. 지난 7일 열린 선거제 개편 대토론회에서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비례대표 비율이 너무 낮아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되지 않으므로 이를 늘리는 것이 제1의 방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로 개혁해야 한다’라며 ‘의석수를 확대하지 않고 비례성이나 대표성을 향상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들 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전제는 맞는 말이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답게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고, 대표성과 비례성 또한 높여야 한다. 하지만 그러므로 의원 정수를 늘려야 된다는 것은 아전인수식 논리다.
비례대표는 전문성을 띤 직능을 대표하거나 사회적 약자, 소수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비례대표는 47명이다. 우선 이들이 제도의 취지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정당의 거수기, 스피커 노릇만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경력을 살펴보니 제도의 취지와는 관계없는, 이런 사람들이 왜 비례대표로 공천됐는지 의아한 의원들도 많다. 지역구 공천은 당내 경선 등을 거치지만, 비례대표의 공천은 그 과정 자체도 불투명하다. 앞 순위 후보 몇 명은 상징성이 높은 인물을 영입해 ‘얼굴마담’ 역할을 하게 하고, 그 외 후보의 경우에는 실세 정치인들끼리 ‘나눠먹기’를 해왔다는 게 정치권에 회자하는 얘기다.
이런 현실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기 위해 의원 정수를 증원하자는 주장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래야 ‘국민의 마음을 열고’ 증원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다’라는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비례대표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개선을 하면 될 거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제안들은 개혁적 차원에서 당연히 추진될 사안이지, 의원 수를 늘리기 위한 호도책이 돼선 안 된다. 선거를 앞두고는 이런저런 혁신을 하겠다며 국민을 현혹해 놓고 상황이 달라졌느니 뭐니 하며 뒤집는 것이 다반사였음을 우리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현재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부족한 숫자인가라는 점이다. OECD 국가들의 경우 국회의원 1인당 평균 약 10만명을 대표하는데 우리나라는 약 17만명을 대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증원을 주장한다. 하지만 의원 수는 그 나라의 제반 상황에 따라 정치적으로 결정될 사안이지 기계적으로 맞출 것은 아니다. 미국 하원의원은 무려 76만명을 대표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국회가 의원들이 부족해서 할 일을 못 하고 있는지, 어느 선진국 의원들이 우리나라처럼 특권을 누리고, 비생산적인지 묻고 싶다.
김대중 정권 시절인 제16대 국회의원의 수는 273명이었다. 외환위기에 따른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에 부응하고 정치를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종전 299명이던 국회 의석 중 지역구 26석을 줄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의원 수는 적었지만 현 국회보다 훨씬 더 국회다웠다.
오늘날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고,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수 증원을 주장하는 건 민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 전 대통령의 정신과도 부합하지 않을 것이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현 국회가 의원 정수를 늘리려 한다는 건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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