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사진 찍고 잔반 도시락 먹는다…中청년들 섬뜩한 경고

임선영 2023. 7.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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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가운을 입은 한 대학생이 캠퍼스 벤치에 엎드려 있다. 학사모로 얼굴을 가린 다른 학생은 인도와 차도에 걸쳐 대(大)자로 누워 있다. 졸업 가운을 입은 채 학교 계단에 널브러져 있는 학생도 있다. 모두 이번 졸업 시즌 동안 중국 현지의 소셜미디어에 올라 관심을 끌었던 사진이다. 중국 대학생들은 웃음과 꽃다발 대신 '좀비 스타일' 사진을 남기는 걸까.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최악의 취업난에 지친 중국 대졸자들의 현실이 반영됐다"고 전했다. '좀비 졸업 사진'을 촬영한 중국 란저우대의 한 졸업생은 WP에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초부터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냈지만, 단 한 곳도 합격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달 졸업 가운을 입은 중국의 대학 졸업생들이 캠퍼스 내 벤치, 바닥과 계단 등 곳곳에 시체처럼 누워 있다. 중국의 대학 졸업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좀비에 비유해 연출한 모습을 졸업 사진으로 남겼다. 트위터 캡처


역대 최악 청년 실업…대학가엔 '좀비 스타일' 유행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8%를 기록했다. 중국이 2018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고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8년 12월 10.1%와 비교해 두 배 증가했다. 미국의 6.5%, 유럽연합의 13.8%, 한국의 5.8%보다 높다.

청년 실업률이 더욱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대학은 주로 6~7월 졸업식을 한다. 오는 7~8월이면 신규 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 가세하게 된다. 게다가 올 중국 대졸 예정자는 전년보다 82만 명 증가한 1158만 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베이징의 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현지 언론에 "올 봄부터 수백 개의 이력서를 넣었는데, 서류 합격률이 10%도 되지 않았다"며 "나는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된다"고 토로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청년 취업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직면했다"고 평했다.
신재민 기자


기대에 못 미치는 리오프닝…채용시장 얼어붙어


중국의 높은 청년 실업률 배경엔 불안한 경제 전망이 있다. 지난달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에서 5.4%로 낮췄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제로 코로나 정책을 끝내고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국면에 돌입했다. 올 1분기 반짝 회복세를 보이자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난 5월 발표된 소비와 생산, 수출 등 주요 경제 지표는 이같은 기대와 딴판이었다. 소비의 주요 척도인 소매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12.7% 증가하는 데 그쳐 상승폭이 전월(18.4%)보다 낮아졌다. 산업 생산 증가율은 3.5%로 전달에 못 미쳤고,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7.5% 감소했다.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자 기업들도 신규 고용에 소극적이다.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빅테크 기업들은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대대적인 규제 여파로 이미 각각 수천에서 수만 명을 감원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정부가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편 2020년부터 악화하기 시작해 2021년 6월 이후 14%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취업도 결혼도 포기한 한국의 N포 세대와 같은 '탕핑(躺平·드러눕다)족'이란 말도 이 무렵 생겨났다.

중국의 폐쇄적인 대외 정책도 청년 일자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지용 계명대 인문국제대학 교수는 중앙일보에 "중국이 제정·강화한 대외관계법과 반간첩법 등의 여파로 해외 자본의 대중국 투자가 위축되고,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6일 베이징 인민대의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 EPA=연합뉴스


공무원 시험 응시자 사상 최대…'전업 자녀'도 등장


중국 청년들은 자구책으로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거나 졸업을 늦추고 있다. 미 CNBC가 지난 3월 분석한 결과 올해 중국 전역에서 20만 명을 선발하는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770만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청년보는 "최근 인터뷰한 대학생 중 70%가 '주변에 졸업을 늦춘 학우가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취업난을 피해 아예 부모와 함께 살며 집안일을 하고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전업 자녀'도 생겨났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근로 시간과 월급이 명시된 계약서까지 작성한다고 한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인 잔반 블라인드 박스가 포장돼 있다. 트위터 캡처

이런 현실 속에서 중국 청년들에게 잘 차린 한 끼는 사치가 됐다. 팔고 남은 음식들을 할인해 파는 '잔반 블라인드 박스'가 요즘 중국 청년들에게 인기다.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원래 40위안(약 7000원)인 빵 세 개를 17.9위안(약 3200원)에 구매한 뒤 "횡재 했다"며 기뻐하는 한 청년도 소개했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선 '바이런판(白人飯·백인의 식사)' 열풍도 불고 있다. 한 두 개 재료만 들어간 샌드위치, 샐러드 등 중국인들 기준으론 서양인들이 먹을 법한 단출한 점심 식사를 의미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따뜻하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취업난으로 중국 청년들은 '눈물 젖은 도시락'을 먹고 있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열풍인 바이런판(백인의 식사). 한 두 개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 등 간편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최악의 취업난을 겪는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다. 트위터 캡처

중국 내부에선 지금과 같은 일자리 불안이 계속될 경우 "청년들이 공산당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중국의 20~30대는 공산당의 핵심 지지 세력으로 분류된다. 어린 시절 고도 경제 성장의 결실을 누리며 철저한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경제학자들은 청년 일자리 문제가 중국의 체제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인민대 싱크탱크 중국거시경제포럼은 보고서에서 "청년 실업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 영역을 넘어 사회 문제를 촉발하고, 나아가 정치적 문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중국의 청년 실업 문제가 향후 10년간 계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입대·귀촌 등 대책 쏟아내지만 실효성 의문


중국 청년의 동요 조짐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청년 조직 공청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청단원은 7358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13만2000명 줄었다. 공청단의 주축 세력인 학생단원이 전년보다 8.3%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로 코로나를 반대한 백지 시위의 주축 세력도 청년 세대였다. '좀비 졸업사진'도 청년들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제로 코로나 반대 백지 시위. 이 시위의 주축 세력은 청년 세대였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상황을 인식한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6일 공산당 청년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젊은이들이 고난을 더욱 잘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청년 고용 기업에 대한 보조금 범위를 확대하고, 인민해방군 채용에서 신규 대졸자의 비율을 늘리겠다고 했다. 또 청년 대졸자들에게 귀촌을 독려하고, 금지했던 노점상 재허용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청년 실업은 이런 식으론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국거시경제포럼은 "중국의 청년 실업 문제는 코로나19 규제로 인한 민간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다"며 "(청년 채용 기업에 대한) 보조금 정책 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보다 강력한 경제 회복과 노동 시장 회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4일 정부는 올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당초 1.6%에서 0.2%포인트 햐향 조정했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서비스업에 한정돼 제조업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하다고 판단해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에 "중국의 경기 회복이 기대만 못하면서 한국으로선 대중국 수출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용 교수는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 이외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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