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한숨 돌렸네"…전세금 떼일 위험 잦아들자, 집값이 꿈틀
2년 전 서울 동작구의 한 역세권 아파트(전용 84㎡)를 9억5000만원에 세입자와 전세 계약한 A(55)씨는 다음 달 만기가 다가오며 골머리를 앓았다. 최근 전세 시세가 8억원 정도에 형성돼 역전세(기존 전세계약보다 전셋값이 하락)가 발생해서다.
A씨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 차액 1억50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급매물로 내놔야 하나 고민하다가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에 한숨을 돌렸다. A씨는 “직장 때문에 나도 경기도에 전세를 살고 있어 추가 대출이 어려웠는데 한도가 늘어난다니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일 이달 말부터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전세보증금 반환목적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역전세 상황인 집주인을 대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적용해 대출 한도를 늘린 것이다. 예컨대 연 소득 5000만원 차주의 경우 연 4% 금리, 30년 만기로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을 받을 경우 DSR 규제 때보다 최대 1억7500만원을 더 빌릴 수 있다.
1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에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담도 낮아진 터라 다주택자 등 임대인들은 대체로 안도하는 분위기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하반기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한다. 사실 역전세 사태는 하반기 주요 경제 리스크로 꼽혔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잔존 전세계약 가운데 ‘역전세 위험가구’는 작년 1월 51만7000호(25.9%)에서 올해 4월 102만6000호(52.4%)로 배 가까이 급증했다. 두 집 걸러 한 집이 역전세 상황이다.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은 부동산이 고점이던 2년 전 전국의 주택 전세거래총액을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전세계약이 만료되는 전세보증금 총액이 약 30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중 서울이 약 118조원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 98조원, 인천 15조원 등 수도권에만 233조원가량(77%) 집중됐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향후 1년간 만료되는 전세보증금 총액이 역대 최대 규모인 데다,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잇따를 경우 시장 혼란이 커질 우려가 높았다”며 “임대인 역전세 대출 완화로 리스크가 어느 정도 경감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전세 시장의 불확실성이 줄면서 향후 전세, 매매 가격이 다소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임대인의 자금 여력이 생기면 급매물을 거두고 관망하면서 호가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집값이 저점이던 2~4월 급매물이 한 차례 소화된 후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대출 금리가 하락하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반등한 상황이다. 역전세 우려가 컸던 인천 검단신도시, 강남 개포동 등도 최근 전셋값이 수 천만원, 수 억원씩 오르며 당초보다 우려가 가신 모습이다.
실제 임차인 등 실수요자 사이에선 집값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내년 3월 전세 만기를 앞둔 임차인 B(37)씨는 “정부 발표를 보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떼먹진 않겠다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집주인들이 집을 적극적으로 내놓기보다 버티기에 들어가면 전세나 매매가격이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부가 갭투기 역전세까지 대출 완화로 메워주는 것 아니냐’는 성토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권 리서치팀장은 “하반기 시장은 대체로 전세 하락 폭이 줄고 보합을 띨 가능성이 높다”며 “매도인과 매수인의 희망가격 간극 차가 커서 눈치 보기 장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주인의 월세 선호 현상이 강화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이번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은 실행 시 은행이 해당 주택의 선순위 근저당권을 가져가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선 후속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 “추가 대출로 이자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집주인이 마냥 득이 되는 상황도 아니다.
월세로 돌리는 사례가 늘 수 있고, 전반적으로 서민의 주거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박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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