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엔 삼계탕? 여름 지나고 먹을까…고민 부른 무서운 가격
초복을 하루 앞둔 10일 낮 12시. 직장인 김동민(48)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삼계탕집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메뉴판에 적힌 삼계탕이 한 그릇에 2만원이어서다. 1년 전 가격(1만8000원)보다 2000원 올랐다. 회사 인근에서 가볍게 점심 먹을 때 드는 돈의 두 배 수준이다. 오골계·전복·산삼을 넣은 삼계탕은 더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기본’ 삼계탕만 한 그릇 먹고 나왔다. 김씨는 “안 오른 물가가 없지만, 삼계탕은 유독 비싼 것 같다”며 “복날 몸보신 하려고 들렀는데 마음이 쓰렸다”고 말했다.
초복 삼계탕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10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외식비 가격 정보’를 분석한 결과 서울 지역의 5월 기준 삼계탕 한 그릇 가격은 1만6423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 가격(1만4577원)보다 1846원(12.7%) 올랐다. 같은 기간 1인분에 200~600원 정도 오른 김밥·자장면·냉면·비빔밥 등 주요 외식 품목과 비교해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여름철마다 메뉴판을 바꾼다는 냉면(1만923원)과도 격차가 컸다.
서울 시내 곳곳에 있는 유명 삼계탕집의 실제 판매 가격은 통계 수치보다 더 높았다. 외국인 ‘관광 명소’로 꼽혀 점심때마다 긴 줄이 늘어서는 중구 ‘고려 삼계탕’은 삼계탕 한 그릇에 1만9000원이다. 가장 비싼 ‘산삼 전복 삼계탕’은 3만1000원이다. 역대 대통령이 즐겨 찾은 종로구 ‘토속촌’은 기본 삼계탕 2만원에 ‘산삼 오골계 삼계탕’이 3만1000원이다. 영등포구 ‘호수 삼계탕’은 한 그릇에 1만8000원, 용산구 ‘강원정’은 1만7000원이었다.
도매가는 폭락했는데 소매가는 요지부동인 한우처럼 유통 과정에서 마진이 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난달 닭고기 도매가는 ㎏당 3954원으로 지난해 6월 ㎏당 도매가(3477원) 대비 13.7% 올랐다. 소매가는 ㎏당 6439원으로 1년 전 ㎏당 소매가(5719원)보다 12.6% 올라 상승률이 엇비슷했다. 일반 닭고기 가격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해 10월(8.8%)을 제외하고 달마다 두 자릿수 상승률(전년비)을 기록했다.
삼계탕은 보통 여름철 수요가 늘며 가격이 따라 오른다. 올해 유독 상승세가 가파른 건 지난 2월 유행한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전국에서 닭을 약 80만 마리 살처분하는 바람에 닭고기 공급이 줄었다. 통계청 ‘2023년 1분기 가축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육용계(鷄) 사육 두수는 8885만2000마리였다. 1년 전보다 113만8000마리(-1.3%) 줄었다. 3년 전인 2020년 1분기(9635만 마리)와 비교해 약 750만 마리 감소했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사육 두수가 가장 적었다. 일반 닭은 보통 부화한 뒤 30일, 삼계는 45일쯤 키운 뒤 도축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며 국제 곡물값이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1위 육계 업체인 하림의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사료 원료로 쓰는 소맥·옥수수·대두박의 ㎏당 가격이 1년 전보다 각각 40.7%, 22.7%, 30.6% 올랐다. 사룟값은 닭 생산 원가의 50~60%를 차지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가를 독려해 지난달 삼계탕용 닭 공급량을 1년 전보다 19.9% 늘렸다. 지난 1일부터는 수입산 닭고기 관세율을 0%로 내렸다. 기존엔 기본세율이 20~30%였는데 연말까지 3만t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재환 농식품부 축산경영과장은 “9월까지 닭고기 공급이 평년 대비 부족할 전망이라 공급을 늘리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 3월부터 닭 사육두수가 늘어난 만큼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가격이 다소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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