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은 없고 '양편'만 있다…또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view]

윤성민, 전익진, 최모란 2023. 7.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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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체제에서 탈선하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한림대 도헌학술원이 주최한 도헌포럼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가 이렇게 분석한 건 최근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 양극화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필요 없는 대립으로 정상적인 제도의 틀을 통해 대화할 수 있는 규범을 없애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처럼 ‘대화할 수 있는 규범’이 한국 정치에서 사라진 때도 드물다. 주요 사안마다 매번 진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서다. 야당의 의혹 제기로 본격화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김건희 특혜’ 논란의 전개 양상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세 수위를 높이자 정치인 출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일 사업 백지화를 선언해 버렸다. 원 장관은 10일에도 “지금처럼 거짓 정치 공세가 계속되면 사업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극단으로 가긴 야당도 마찬가지다. 특혜 실상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의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는 10일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회견문을 통해 “(고속도로 종점 변경은)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로 명백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회견은 촛불행동 등과 함께였는데, 이들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쳤던 단체다. 회견장엔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 의무’라고 적힌 피켓도 등장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응했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야당 의원들로 구성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국회의원단’은 방류 저지를 위해 10일 도쿄로 출국했다. 한국보다 더 빨리 오염수가 도달하는 뉴질랜드 정부는 이날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에 대한 IAEA 조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밝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IAEA 보고서를 민주당처럼 평가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자파가 안전하다는 환경영향평가 결과도 “못 믿겠다”고 했다.


양평군민들 “여야 정쟁 중단하고 사업 재개하라” 반발 시위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3일 발표한 ‘한국의 정치 양극화’ 보고서에서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양극화의 특징을 13가지로 설명했다.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정치,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혐오의 정치, 여론 동원 정치의 심화 등이다. 권혁용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정치학회보 ‘2023 봄호’에 실은 논문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에서 퇴행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반대당 괴롭히기와 허약한 의회’를 지적했다. 이 모두 최근 일련의 여야 공방에서 국민이 목격하는 현실이다.

‘무책임한 정당정치’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등에서 실제 이해 당사자인 국민은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갑자기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백지화될 위기에 처하자 경기도 양평 주민은 황당할 뿐이다. 양평군 이장협의회, 새마을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지역주민 등 400여 명은 10일 양평군청 앞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추진 재개 범군민 대책위’ 출정식을 열었다. 이들은 ‘고속도로 IN! 정쟁 OUT!’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장명우 공동대책위원장은 출정사를 통해 “양평 군민의 열망, 의지와 상관없이 사업 추진의 전면 백지화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해 너무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여야를 떠나 모든 정치적 쟁점화를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오염수 논란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한국연안어업인중앙연합회도 나섰다. 연합회는 부산역 광장에서 어업인에 대한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수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우리 수산물 소비 촉진 어민 호소대회’를 열었다. 김대성 연합회장은 “바다 생활을 통해 몸소 익힌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 살던 물고기들이 우리 동해나 남해 앞바다에서 잡혔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 오염수의 해양방류를 앞두고 피해를 본 수산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3500억원 상당의 예산을 집행할 방침이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과거 한국정치학회에 발표한 글에서 “정치적 양극화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평등한 참여와 다수 지배의 원리를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소수의 지배를 강화시킨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당시엔 소수의 강성 지지자에 휘둘리는 당내 정치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지만, 최근 여야 공방에서도 그 양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무책임한 결정, 극단주의 주장, 괴담 정치 등으로 목소리를 키워 이득을 얻는 건 소수의 정치인과 소수의 강성 지지층밖에 없어 보인다.

윤성민 정치에디터, 전익진·최모란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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