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 해요" 그 뒤…12살 아이 29.5㎏ 멍투성이로 숨졌다
“어머니께서 오늘 6시 30분에 깨워주셨는데 제가 정신 안 차리고….”
지난 2월 숨진 열두 살 A군의 일기장엔 자책이 가득했다. 지난해 6월 1일의 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7시 30분이 돼서도 (성경을) 10절밖에 안 쓰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똑바로 하라고 하시는데 꼬라지를 부렸다.” A군을 살해한 사람은 일기에 나온 의붓어머니(43)였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11개월간 인천시의 한 아파트에서 의붓아들 A군을 학대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10살 때 38㎏이던 A군의 몸무게는 사망 시점엔 29.5㎏이었다. 빼빼 마르고 멍투성이가 되어도 의붓어머니의 학대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학부모가 구두로 학교에 통보하면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홈스쿨링(가정 내 학습)’의 영향이 컸다. 출석으로는 인정되지 않지만, 일선 학교에 도입된 제도다.
“얼굴 한 번만 봤더라면”…학대 의심 사건, 20건 수사 중
A군 사건은 이런 홈스쿨링이 아동학대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줘 충격을 줬다. 홈스쿨링을 포함한 ‘미인정 결석’ 상황이 아동학대로 이어진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학대 사망 아동 40명 중 19명이 교육기관에 다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가 지난 3월 실시한 ‘장기 미인정 결석’ 학생 전수조사에선 7일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은 유치원·초·중·특수학교 학생 6871명 중 59명이 아동학대가 의심됐다. 이 중 4건이 검찰에 송치됐고, 16건은 경찰이 수사 중이다.
개정 매뉴얼에 따르면 홈스쿨링 등을 이유로 학부모가 아이를 등교시키지 않겠다고 할 경우 최대 6일 이내에 반드시 학교 관계자가 가정 방문을 해야 한다. 1~2일에는 유선으로 아이의 등교를 유도하고, 3~6일 사이에는 가정을 찾아가 아이의 소재와 안전 등을 확인한다. 이 기간에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을 분리해 상담을 진행, 결석 이유를 조사한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7일째에는 상담 내용과 소재 확인 결과 등을 종합해 교육부에 보고해야 하며 학대 정황이 적발되면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매뉴얼에는 미인정 결석뿐 아니라 교외체험학습 등 다양한 사유로 결석이 2주간 반복, 지속하는 경우 대면 관찰을 필수로 하고 있다.
등교 강제 수단 없어…“매뉴얼로는 한계”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대면 관찰을 한다고 해도 불시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이가 괜찮은 것처럼 꾸며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면을 하는 아이들에 대해 일정 기간 학교에 숙제를 제출하거나 학교의 학생 상담 주기를 명시하는 등 안전을 확인할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 현장에선 섣불리 아동학대로 의심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를 호소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코로나19 유행,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학부모들의 연차 사용이 활발해지며 아이들의 인정 결석도 부쩍 늘었다”며 “해외여행 간다고 체험학습을 신청했는데, 그 기간에 학부모가 전화를 안 받았다고 학대를 의심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사립유치원의 원감은 “기관에 의무만 지울 게 아니라 (학대 정황 중 하나인) 영유아 검진을 받지 않은 학부모에게는 아동수당 삭감 등으로 경각심을 심어주는 행정 조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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