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소전쟁 시대, 한국의 해법은
중국 정부가 오는 8월부터 희귀광물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해 수출통제 조치 시행을 예고했다. 갑작스러운 조치였지만 중국의 대응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미국은 화웨이, SMIC 등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와 첨단 반도체 및 장비의 수출통제 조치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해 왔다. 이에 중국은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구매 중단 조치로 대미 응전의 첫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을 사흘 앞둔 지난 3일 전격적으로 갈륨과 게르마늄을 수출 허가 대상 품목으로 지정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를 보내지 않으면 중국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보내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자연 상태의 광물로 채굴되지 않고 알루미늄, 아연 등 타 금속 제련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된다. 갈륨은 차세대 전력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이며, 게르마늄은 반도체 공정용 가스의 원료이자 광섬유, 야간 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전 세계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94%와 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고순도로 정제된 갈륨은 중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생산되고 있으며 과거 우리나라도 생산했던 전력이 있다. 게르마늄 역시 대체 가스를 사용할 수 있고 수입처 다변화도 가능해 당장의 공급망 리스크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이 이들 광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핵심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2020년 희토류 17종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생산량 1위인 광물은 33종에 달한다. 특히 희토류 중에서도 원자량이 큰 중(重)희토류 10종은 중국이 100% 장악하고 있다. 네오디뮴을 비롯해 란타넘, 세륨 등 경(輕)희토류 7종도 세계시장의 85%가 중국 몫이다. 희토류와 함께 중국의 다음 카드로 꼽히는 천연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를 만드는 데 필수 소재다. 중국이 희토류와 흑연의 수출을 막으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기차·배터리 생산 대란’이 닥칠 수 있다. 이처럼 세계 광물 수급을 틀어쥔 중국이 주요 광물을 수출통제 목록에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전 세계 공급망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천연 흑연과 인조 흑연의 92% 이상, 수산화리튬과 영구자석의 8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의 수출통제에 취약하다.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에 대한 전략으로 다소 유화적인 어감의 디리스킹(de-risking)이 부상했지만 반도체, 바이오, 친환경 기술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려는 미국의 정책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핵심 광물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 역시 첨단 산업에서 미국의 독주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소통은 이어지겠지만, 먼저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려는 양국의 힘겨루기는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통제는 앞으로 펼쳐질 ‘원소전쟁’의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과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핵심 광물의 양이 지금보다 수십 배로 늘어나면서 이들 광물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역량이 미래의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주요 광물의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공급망 위기를 감지할 조기경보시스템을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 나아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핵심 광물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한편 자원순환 및 재자원화를 위한 기술을 확보하고 국내외 자원개발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날로 치열해지는 원소전쟁 속에서 우리의 생존을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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