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시선] 어공이든 늘공이든

조민근 2023. 7. 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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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이래서 ‘늘공’과 ‘어공’의 차이가 있구나 생각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놓고 논란이 불거진 3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국토부가 제시한 이른바 ‘대안 노선’의 종점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많다며 야권이 ‘특혜론’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뒤였다. 원 장관에 따르면 국토부의 관료들, 즉 ‘늘공’(늘 공무원)들은 무척 억울해 했다고 한다. 더 적절한 노선을 찾으려 했을 뿐인데 뜻밖의 정쟁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 고속도 논란, 새마을금고 불안
출신·관할 따라 달라지는 처방
국민 눈에는 모두 공무원일 뿐

하지만 보고를 받은 원 장관은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했다. 기존 안으로 돌아가란 얘기였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정무직 장관 입장에서 보면 굳이 오해를 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설사 양평군에 손실이 가더라도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재검토를 하라고 했다”며 “이래서 정무직 장관이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야당의 파상적 공세는 더욱 거세졌고, 원 장관은 아예 사업 추진을 백지화하겠다고 맞받았다. 결국 남은 건 극단적인 진영 공방뿐이다. 늘 벌어지는 단순한 정쟁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숙원인 1조8000억원짜리 대형 인프라 사업이 볼모가 됐다는 게 문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야권은 누군가가 대통령 처가에 특혜를 주려 노선을 바꿨을 것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관가의 일하는 방식을 지켜본 경험상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진 않는다. 대부분 늘공들은 그런 일을 누가 시킨다고 덥석 할 정도로 간이 크진 않다. 하물며 시골의 조그만 지방도도 아니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지켜보는 수도권 고속도로 아닌가.

원 장관 말대로라면 의혹 제기의 빌미를 준 건 ‘정무적 판단력’ 부족이다. 이 경우에는 관료들의 ‘타성적 일 처리’가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도로 신설은 늘 민원이 빗발치고 갈등이 첨예하게 맞붙는 사안이다. 외풍에 덜 흔들리려면 노선 변경에 앞서 사업 추진의 목적과 원칙부터 분명히 해야 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 내용에서 그런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양평에 진출입로(IC)를 만들어달라는 지역 정치권의 요구에 큰 고민 없이 선 하나를 다시 그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 결과 도로를 놓는 목적도 주말 교통량 분산인지, 양평군민의 편의인지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

추진 과정 역시 그리 치밀해 보이진 않는다. 도로 후보지 주변에는 대통령 처가를 포함해 유력 인사들의 땅이 산재해 있는 등 곳곳에 정책 추진의 리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장관에 보고된 건 일이 터지고 나서였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전문가, 이해관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지만 특별히 애쓴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형식적 절차만 따르는 타성적 일 처리로 혼선이 빚어진 일은 최근 또 있었다. 새마을금고 얘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부실화하며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은 최근 6%대까지 치솟았다. 시중은행의 2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불안을 느낀 예금자들이 돈을 찾기 시작하며 2월 이후 7조원가량 빠져나갔다. 급기야 지난주에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조짐까지 일었다.

경보음은 이미 지난 1분기 말부터 울렸다. 하지만 다른 금융권과는 달리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이른바 ‘관할권’ 탓이 크다. 새마을금고는 시중은행이나 농·수협처럼 금융당국의 검사를 받지 않는다. 감독권이 행정안전부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안부가 자산규모 284조원에 거래고객만 2300만 명에 육박하는 새마을금고를 다루기엔 힘이 부친다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은 10여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순환보직으로 자리를 채워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위기 대응도 미숙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한 합동대응팀이 꾸려진 건 채권시장에 불똥이 튀는 등 파장이 커진 이후였다.

공무원들이 관할부터 따지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행안부는 새마을금고 감독권을 금융당국에 넘기면 고유의 설립 취지와 서민금융 기능이 위축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사연까지 생각해가며 새마을금고에 돈을 넣은 국민이 얼마나 될까. 행안부 공무원이든 금융위 공무원이든 내 돈이 안전하도록 잘 감독해주길 바랄 뿐이다.

늘공과 어공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겐 모두 이 정부의 공무원일 뿐이다. 원 장관도 야당과 치킨게임을 불사하겠다는 정치인의 승부수 대신 어렵더라도 혼선을 수습해가는 공무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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