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새의 카탈로그
아름다운 새 소리가 마치 합창처럼 울려 퍼지는 깊은 숲속. 한 남자가 종이를 들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바로 새들의 울음소리를 악보에 적고 있는 것이다. 틈날 때마다 숲속으로 들어가 열심히 새들의 울음소리를 악보에 옮긴 이 사람은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다. 그는 이렇게 채집한 새소리를 자신의 음악 언어로 삼았다.
그는 다양한 새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볐다. 새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그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며칠씩 숲에서 보낸 날이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열심히 새를 찾아다니는 사이, 메시앙은 어느새 조류 전문가가 되었다. 프랑스 조류학회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을 ‘열성적인 아마추어 조류학자’라고 불렀다.
메시앙의 작품 중에 ‘새의 카탈로그’라는 것이 있다. 모두 13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곡에는 알프스 노랑부리 까마귀, 노랑머리 꾀꼬리, 바다직박구리, 흰머리 딱새, 올빼미, 숲 종다리, 개개비, 쇠종다리, 세티꾀꼬리, 바위 직박구리, 말똥가리, 검은 딱새, 마도요와 같은 제목이 붙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이 새들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 나오는 새는 그 곡의 중심이 되고,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새가 나오는데, 곡에 등장하는 새를 합치면 모두 77종이나 된다. 제목 그대로 ‘새의 카탈로그’다.
‘새의 카탈로그’는 조류학자의 과학적 관찰과 작곡가의 예술적 영감이 만나 탄생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다. 오랫동안 새소리를 들어온 메시앙은 누구보다 정확하고 능숙한 솜씨로 새소리를 재현할 수 있었다. 그가 악보에 그려 넣은 새소리와 실제 새소리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두 소리가 너무 똑같아서 놀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음악으로 구현한 조류도감이라 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조류도감이 아닌 귀로 듣는 조류도감이라니. 발상이 참 발랄하고 신선하구나.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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