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가 무서운 진짜 이유[임상균 칼럼]
브랜드 인기가 높다 보니 후지중공업은 2017년 아예 회사명도 ‘스바루’로 바꿔버렸다. 막강한 브랜드 로열티에도 스바루는 세계적인 자동차사 대열에 들지 못했다. 투박한 외관 디자인, 열악한 옵션, 불만스러운 AS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후지중공업에 절호의 기회가 왔다. 2010년대 초반 엔화값은 끝없이 추락했다. 2010년부터 2013년 말까지 달러당 엔화값은 81엔에서 104엔까지 28% 절하됐다. 일본 제조 업체는 세계 시장에서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 당시 대규모 이익이 났다. 토요타의 경우 2013 회계연도 영업이익이 급증하며 6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히타치도 23년 만에 최대 영업이익을 낸다고 들떴다.
후지중공업도 경상이익이 2.9배 급증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쯤 되면 판매가 대폭 인하로 파상 공세를 펼치며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할 법했다. 경영자라면 ‘마니아를 위한 차’가 아닌 ‘세계 대중을 향한 차’로 욕심을 내는 게 당연하다.
“손님은 충분히 늘고 있습니다. 이들이 3년 후에 다시 스바루를 찾아오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업설명회(IR)에 나선 요시나가 야스유키 당시 사장의 발언은 의외였다. 엔저 활용 전략을 묻는 질문에 미국 시장에서 딜러들에게 판매 인센티브를 잔뜩 지급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대신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AS 설비를 늘리거나 미케닉을 추가 고용하는 딜러사에 본사에서 비용을 제공하는 플랜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R&D에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 제조업의 수출가격지수는 2010년을 100으로 환산할 때 2013년 말 98.8을 기록했다. 4년 새 수출가격을 1.1% 내리는 데 그쳤다. 후지중공업의 경우 미국 딜러들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2013년 12월 1대당 835달러(약 89만원)로 2012년 10월 892달러보다 오히려 줄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엔저를 활용해 체질을 강화하고 기술력과 판매와 AS망을 강화하는 전략은 곧 효과가 나왔다. 2014년 후지중공업은 세계 최대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딜러망을 강화한 전략과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였다.
엔저 열풍이 다시 거세졌다. 원화 대비 엔화값은 800엔대를 넘나든다. 하지만 큰 걱정이 없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우리와 일본 제조업의 수출 경합도가 많이 하락했고, 2010년대 엔저 시대에도 우리 수출이 양호했다는 걸 이유로 든다.
하지만 당장의 숫자보다 중장기적 경쟁력 차원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 제조업이 2010년대 초반 전략을 조용히 재가동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마쓰다는 “1달러당 77엔이 돼도 이익이 나는 회사를 만들겠다”며 해외 공장 건설에 열을 올렸다. 초대형 적자로 생존 위기에 몰렸던 파나소닉은 엔저 덕에 바로 흑자전환하더니 돌연 기존 사업 대부분을 정리하는 엄청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지금 파나소닉은 LG에너지솔루션, CATL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적인 이차전지 업체로 변신했다. 엔저를 활용한 일본 기업의 경쟁력 강화 전략은 두고두고 우리 제조업과 수출을 억누를 가능성이 높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7호 (2023.07.12~2023.07.18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대통령 지원 발언에...우크라 재건 관련주 ‘들썩’ [오늘, 이 종목] - 매일경제
- K뷰티도 럭셔리가 되네? ... ‘디어달리아’ 샤넬, 디올과 어깨 나란히[내일은 유니콘] - 매일경제
- 청약 나서는 센서뷰·와이랩...수요예측 흥행 이어갈까 [IPO 따상 감별사] - 매일경제
- 美 장갑차 프로젝트 하차한 한화...호주 ‘레드백’으로 만회할까 - 매일경제
- 완성차 판매 ‘훨훨’ 날아가니 부품株도 ‘씽씽’ - 매일경제
- “이 와중에 10억 올랐다고?”...은평뉴타운 집값 자고 나면 ‘쑥쑥’ [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일
- “급한 불 끈다” 1년간 집주인 DSR 70% 넘어도 ‘전세금 반환대출’ - 매일경제
- ‘페이커’ 내세운 삼성 OLED 게이밍 모니터 글로벌 3천대 돌파 - 매일경제
- “6억짜리가 3억으로”...전세 ‘반 토막’에 송도 집주인 ‘곡소리’ [김경민의 부동산NOW] - 매
- 메타 ‘스레드’ 훈풍에...협력사 주가 연일 상한가 [오늘, 이 종목]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