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대립 속 혼란한 한국, 김대중 외교 배워야할 이유
[장신기 기자]
최근 중국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큰 이슈다. 중국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대중국 외교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중국과 연관된 주변국 외교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일본을 상대로 한 것과 유사할 정도로 중국 관련 논의와 전략이 쏟아진다. 이 모두 결국 우리의 생존·평화·발전을 위한 고민의 결과일 테다. 이러한 때 한국 외교의 최전성기를 개척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국 외교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대중은 한일관계 발전에 있어 매우 중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의 대중국 외교의 성격·공헌·업적 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긴 하다. 그런데 김대중은 한중관계의 전성기를 개척했으며 대통령 재임 전과 후에도 중국의 주요 지도자, 지식인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대해 논의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이런 역할을 한 인물은 김대중이 유일하다.
또한 김대중은 서거 전까지 중국과 관련한 여러 진단과 예언을 했는데 그 내용은 지금 시점에서도 유효한 내용이 많다. 이는 김대중의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을 알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그의 대중국 외교 인식과 전략을 살펴보는 것이 현 시점에서도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 책 <김대중과 중국>(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 김지현 |
김대중, 중국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예지력을 보여주다
나는 지금 정부에 대하여 주변 정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개선을 준비하고,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하여 대만과의 국교를 끊으라고 제안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 비추어 중국과의 평화적 관계없이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아시아의 평화와 한중 관계의 발전을 위하여 내가 직접 북경을 방문하여 중국 지도자들과 협의할 기회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 중국을 중공(中共)이라고 하면서 반중·반공적 시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1979년 김대중의 인식은 매우 파격적이고 앞선 것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김대중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치중하여 소위 친중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김대중은 원칙있는 실용주의 외교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막연히 친(親)과 반(反)의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중공의 근대화 목표는 20세기 말까지 경제적 선진 국가의 대열에 끼는 것이라 하지만 그들의 참 내심은 21세기에 가서 미국과 소련을 앞서 문자 그대로 중화대국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와 중국 사람의 의식 구조에 비추어 능히 추측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때는 미중 수교(1979년 1월)가 이뤄진 지 몇 년 지나지 않았고 미중관계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가득할 때였다. 또한 김대중은 1980년 5월부터 내란음모조작사건으로 수감돼 외부 세계의 정보를 자유롭게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김대중은 중화사상에 기반한 중국의 대국지향적 속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매우 놀라운 통찰력이다.
▲ 김대중과 장쩌민 김대중과 장쩌민입니다 |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김대중, 시진핑을 향해서도 조언하다
중국과 국제관계에 대한 통찰력은 그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김대중은 미중우호협력관계가 언젠가는 흔들릴 수 있다고 예견했기 때문에 미중협력이 이뤄지고 있을 때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동북아평화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북 햇볕정책과 함께 미중협력관계 지속을 위한 국제외교도 병행했다.
그래서 김대중은 미국에서 중국위협론이 불거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향해 대중국 햇볕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중국을 향해서는 상승한 국력을 바탕으로 패권을 추구하지 말고 협력적 리더십 발휘를 강조했다. 김대중은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를 두고 충돌할 것을 경계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동북아 정세는 제2차 냉전시대를 지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1차 냉전이 미·소 대립이었다면 2차 냉전은 미·일 대(對) 중·러인데 그 사이에 한국이 1차 냉전 때와 같이 주무대가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게 아닌가, 또 한 번 우리가 시련 속에 있지 않나 걱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미리 예견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김대중은 1990년대에는 미중관계발전을 위해 미국의 대중국 외교기조에 대한 조언을 주로 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을 향해서도 여러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국력이 상승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말고 협력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의 대국은 억압과 착취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대국, 평화에 대한 책임, 기아에 대한 책임, 질병에 대한 책임, 환경에 대한 책임, 인류 화해에 대한 책임, 이런 것을 지는 것이 대국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한나라 혹은 명나라, 송나라 시절이었을 때 중국 대륙이 천하였습니다. 그때도 최고 이상이 천하태평이었습니다. 그때는 황제가 그 책임을 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구를 하나의 천하로 보는 그러한 천하태평을 바라고 또 그것만이 인류가 파멸하지 않고 살아갈 길인데 그 점에 있어서 오랜 천하태평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중국, 그리고 이제 실질적으로 세계에 그러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중국이 지구 전체의 천하태평의 선두에 서서 큰 역할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 전쟁 후유증과 금융 위기 등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때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서 소련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있던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로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었다.
▲ 김대중과 시진핑 김대중과 시진핑 |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
높이 평가할만한 김대중의 대중국 외교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예민한 곳에 위치한 관계로 국제정세가 크게 요동칠 때마다 큰 영향을 받곤 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와 같은 위기 대응에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실패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실패는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망국의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 숙명을 감안하면 외교는 우리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강대국간의 갈등과 대립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균열의 지점이 경제적 측면 외에도 가치관과 이념 등 정체성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외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김대중 외교, 김대중의 대중국 외교의 성격·내용·의미 등을 파악해보는 것은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김대중의 뛰어난 점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대국에 둘러싸인 중견국가인 한국의 정치지도자로서 한국을 넘어선 국제적 차원의 지역발전 전략을 구상하고 이것의 실현을 위한 활발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이다.
대중국 외교에 있어서 그러한 점은 그대로 나타난다. 김대중은 중국의 세계전략, 한반도전략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에 중국의 영향력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서 설득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양국 사이의 이해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김대중과 중국>, 이 책에선 이와 같은 김대중의 대중국 외교의 기조, 실천, 성과가 잘 정리돼 있으며 김대중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중국의 시각이 잘 나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중대립에 따른 혼란스러운 현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는 구상과 전략을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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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과 중국>(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3)의 공저자이며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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