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도 아닌데 "제발 우리 백화점 오세요"…MZ 홀린 K패션
“프랑스어로 ‘마르디 메크르디’가 ‘화요일 수요일’이란 뜻이어서 매주 화요일 이 브랜드의 옷을 입고 매장을 찾아갔습니다. 계속 명함을 줘도 ‘다른 플랫폼도 많이 온다’며,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얼굴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죠.”
롯데백화점에서 영패션을 담당하는 장세정(37) 치프바이어(선임기획자)는 “2021년부터 마르디 메크르디의 백화점 1호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별일을 다 했다”고 10일 말했다. 몇 달 동안 이메일을 보내도 미팅 일정조차 잡을 수 없어 지난해 6월부터는 석 달간 매주 서울 한남동 매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인제 그만 오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마르디 메크르디는 2018년 론칭한 토종 패션 브랜드다. 꽃 모양을 그려 넣은 티셔츠 등 ‘시그니처 플라워 그래픽’으로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며 지난해 매출 450억원을 올렸다. 그동안 유통 업계의 매장 유치 경쟁도 치열했다. 장 바이어는 지난해 경쟁 백화점의 팝업스토어에 이 브랜드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적진’에서 무작정 기다려 첫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원하는 매장을 구현해주겠다”며 끊임없이 설득했다. 무작정 봄·여름 시즌 ‘룩북(사진 모음집)’ 촬영 현장에 도넛 간식을 싸 들고 갈 정도였다.
2년여의 노력은 지난달 30일 결실을 봤다. 마르디 메크르디가 유통 1호 매장을 잠실 롯데월드몰에 연 것. 입점 브랜드 중 단숨에 외국인 매출 1위 매장이 됐다. 장 바이어는 “오픈하는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이른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전통 명품에 집중하던 백화점 업계가 전략을 바꾸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국내 3대 백화점의 올 1분기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7%, 7.8%, 9.1% 성장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분기 각각 30%, 37.2%, 30.6% 증가했던 것과 비교해 초라한 성적이다.
고물가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명품 시장이 주춤하자 백화점 업계는 ‘더 젊어지는 길’을 택했다. 더현대 서울은 개점 이후 200여 개의 신진 토종 브랜드를 선보이며 ‘K-패션’ 육성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 백화점 1호 매장을 낸 영패션 브랜드 ‘시에’는 올해엔 연 매출 1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구매 고객 중 30대 이하가 65%를 차지하는 더현대 서울과 시너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젊은 고객 유입 효과는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초 잠실에 ‘아더에러’ 매장을 열자 20·30대를 중심으로 300여 명이 ‘오픈런(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뛰어가는 것)’ 했다. 아더에러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메종키츠네’ ‘자라’ ‘컨버스’ 등과 연이어 협업하며 K-패션 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브랜드다. 지난달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마뗑킴’ 매장을 연 이후에는 신규 유입 고객의 65%가 20·30대로 집계됐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2월 부산 센텀시티점에 8879㎡(약 2700평) 규모의 국내 최대 영패션 전문관 ‘하이퍼 그라운드’를 선보였다. 전체 47개 브랜드 중 70%에 달하는 비중을 ‘이미스’ ‘포터리’ 등 국내 브랜드로 채웠다. 오픈 이후 지난달까지 센텀시티점 영패션 매출은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온라인 구매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아울러 외국인 매출 상승 효과까지 볼 수 있는 K-패션 유치로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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