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친 내면과 마주해야 하는 3시간의 고통
[장혜령 기자]
▲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아리 에스터 감독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두고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12년 전 처음 대본을 쓴 후 서랍장에 두었다가 <미드소마>가 끝난 후 수정 끝에 완성했다며 '이제야 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제대로 살아 보지 못한 인생을 경험하면서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말했다.
<유전> <미드소마> 두 편으로 전 세계적 호러 마스터로 우뚝 선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반영해 독창적인 시나리오와 연출력을 선보인다. 늘 가위로 자르듯이 끊을 수 없는 두 가지 '가족', '죽음'이 업보처럼 쫓아다닌다. 이를 평생에 걸친 '트라우마'와 연결 지어 두려움으로 증폭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 관객 각자의 경험을 필터링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조현병을 간접체험하거나 오이디콤플렉스의 변형으로도 읽힌다.
▲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편집증을 앓고 있는 중년의 '보(호아킨 피닉스)'와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 '모나(패티 루폰)'의 광기 어린 관계를 되짚는 불편한 모험이다. 집 앞 슈퍼마켓을 가는 것도 힘겨운 보가 세상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거역하기 힘든 엄마의 부름이다.
엄마 집으로 떠나기 전날 내내 불면증에 시달리다 늦잠을 자버려 비행기를 놓치게 된다. 한껏 들떠 있다가 실망한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던 보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무조건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에 당도한다.
하지만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그레이스(에이미 라이언) 부부의 집에서 머물며 치료 받게 된다. 그 집에서 과분한 보살핌을 받지만 이내 이상한 기운을 느껴 탈출을 감행한다. 가까스로 도망친 이후 숲에서 만난 사람들과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대혼란을 경험하며 기묘한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3시간 동안 쉰이 넘은 보가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궁금해졌다. 시작은 바로 가족이었다. 정신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으로부터 오는 경향이 크다. 질환을 낫게 해주는 보금자리인 동시에 촉발하고 심화하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상호 간의 신뢰와 친밀감이 전제인 라포 형성이 뒤틀린 가족은 기이한 형상으로 찾아와 병이 되기도 한다.
보는 엄마의 과잉보호에 익숙해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 '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해'라는 말을 듣고 자라 여태 부모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아이 같은 행보를 보인다. 오랜 가스라이팅의 당연한 결과다. 아들의 의무감과 죄책감으로 자유를 박탈당했다. 빈 껍데기인 육체, 엄마의 아바타, 그로 인한 건강 염려증과 강박, 과민반응 여러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다.
순종적인 자식과 통제 성향이 강한 부모는 아시아계 가정의 양육 방식과 유사성을 보이며 성모마리아와 비견되는 유대인 모성 신화와 묘한 연결성이 나타난다. 보가 늘 엄마의 말을 거역하는 것 자체가 부담을 넘어선 공포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본인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자식을 옭아맸던 시도로도 읽힌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유년 시절과 일찍 사망한 남편의 빈자리, 성공한 CEO가 되기까지. 홀로 다사다난한 일을 겪어야 했던 엄마는 아이에게 왜곡된 사랑을 쏟으며 서로를 악몽으로 이끈다.
▲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영화는 복잡한 보의 내면에 들어가 평생을 쫓아다닌 것들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기분 나쁜 소리와 충격적인 비주얼, 몽환적인 장면이 불쾌함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영화 속 네 가지 테마와 두 가지 추가 시퀀스는 거울의 방처럼 방이 다른 방을 비추거나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되어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연상케 하는 귀향 모험담이자 다채로운 형식을 취한다.
두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의지와 비현실적인 폭력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경로를 따라가게 한다. 여기서 멈출 것인지, 계속 길을 갈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내면의 성장이 멈춘 보의 안타까운 발악이면서도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자꾸만 포기하게 되는 상황의 연속이다.
아리 에스터의 영화에는 유독 불편한 가족 관계를 통해 피하고만 싶은 근원을 탐구한다. 오히려 행복한 가족, 화목한 가족은 무엇인지를 역으로 떠올려 보게 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이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진 구성원 각자의 사정을 주목한다. 가족과 집, 보편적인 정서란 큰 외피를 벗겨 보면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내면의 성찰이기도 하다.
'보'는 어쩌면 감독 자신을 상징하기도 할 것이며 인간 심연의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 가족이 따뜻한 둥지가 되어줄지,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어줄지 온 힘을 다해 묻고 있다.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어쩌면 가족이 아니었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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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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