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32명' 격추사건도 언급했다…北, 美정찰기 침범 주장 왜
북한이 미국 정찰기가 자신의 영공 침범했다며 '격추'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군은 즉각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고 반박했다. 군 내부에선 미 정찰기가 굳이 북한 영공에 들어갈 이유가 없고 북한의 대응도 없었다는 점에서 "제재에 몰린 북한이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위협적 협박 전략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10일 “미 공중감시정찰자산의 한반도 주변 비행은 통상적인 정찰활동이고 영공을 침범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허위 사실을 주장해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이날 북한은 이날 오전 ‘위험천만한 미국의 도발적 군사활동들을 주시한다’는 제목으로 발표한 국방성 대변인 담화에서 “최근 미국은 각종 공중정찰수단들을 집중 동원해 조선반도와 그 주변지역에서 적대적인 정탐활동을 유례 없는 수준에서 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 정찰기 RC-135, U-2S, RQ-4B(글로벌호크)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동해에서는 몇 차례나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영공을 수십㎞나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북한의 주장이 나온지 3시간만에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군 관계자는 “미 정찰기가 북한 영공에 들어갔다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며 “현실적으로 수백㎞ 밖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정찰기가 굳이 북한 영공에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미군기가 자신의 영공을 침입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취하지 않았다. '적국'이 영공을 침범했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이날 북한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스텔스 기능 없는 정찰기나 폭격기가 영공에 들어갔다면 아무리 방공 능력이 떨어지는 북한이라도 탐지는 했을 것”이라며 “대공포나 전투기 출격으로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는 건 북한 스스로 이날 주장의 오류를 인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 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 동해상에 격추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격추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1969년 EC-121, 1994년 OH-58 헬리콥터, 2003년 RC-135 등 과거 유사한 사례까지 제시했다.
북한이 언급한 EC-121는 미 해군 전자정찰기로 1969년 4월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 MIG-21에 의해 격추된 적이 있다. 당시 격추로 31명의 미군이 사망하자, 당시 닉슨 미국 행정부는 핵 보복 공격까지 계획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북한은 또 1994년 12월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주한미군 OH-58 정찰헬기를 격추한 적도 있다. 당시 사건으로 미군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생포됐다. 2003년 3월엔 MIG-29·23 등 북한 전투기가 공해상에서 RC-135를 북한으로 유도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들 사례 모두 결과적으로 북한 입장에선 ‘성공한 도발’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미국을 향한 군사적 자신감을 보여줌으로써 협박의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실제 군 안팎에선 북한의 이날 담화 내용에 대해 "확실히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상시적인 미 정찰 활동에 대해 영공 침범이라는 허위사실을 연결 짓는 건 북한이 지금껏 벌여왔던 비방전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라며 “특히 실행 가능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격추 등을 운운한 걸 보면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담화”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례적 담화는 "도발을 위한 명분쌓기"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한·미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수싸움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특히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이 북핵 억제방안을 논의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출국이 예정된 날이었다. 또 한반도엔 미 전략핵잠수함(SSBN)의 전개도 예고돼 있다. 존 웨이드너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은 이날 국방부·국회 국방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안보포럼'에서 “SSBN이 조만간 한국에 전개될 예정”이라며 “북한이 핵 공격을 한다면 신속하고 압도적인, 단호한 대응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오는 18일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주시하면서 한반도 군사적 긴장고조에 대한 책임전가를 하고 있다”며 “시위성으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를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미 대적관을 다시 한 번 확고히 하려는 대내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상황에서 오는 27일 '전승절'로 명명한 6·25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을 맞이한다. 신종우 국장은 “그만큼 수위 높은 내용으로 단기간에 내부결속을 해야 하는 북한 사정이 담화 곳곳에서 묻어난다”고 말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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