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나라로 안 한국이…" 탈북민, 두만강 건넌 결정적 이유

박현주 2023. 7. 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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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미공급(식량 배급 중단)이 돼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꽃제비 생활도 해봤습니다. 영양실조가 와서 이대로 죽겠다 싶어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10일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취재진과 만난 30대 여성 탈북민 A 씨는 "10살부터는 배급이 아예 끊겼고 그나마 있는 쌀도 경비대에 다 뺏겼다"며 2004년 탈북을 결심하던 상황을 회상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0일 오전 북한 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하나원에서 하나원 개원 24주년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하나원 공개 행사는 2016년 이후 7년만에 처음으로 내신 뿐 아니라 외신 기자까지 포함해 취재진 7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이뤄졌다.


"韓 얘기하면 잡혀가"


취재진 앞에 선 탈북민 세 명은 탈북을 결심한 동기로 경제적 어려움과 식량난을 꼽았다. 2019년 탈북한 20대 탈북민 B 씨는 "국경 지대에 살았는데 2016년부터 밀수가 막히다보니 수입이 없었다"며 "쌀이 없어 굶어 죽을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생활용품을 해결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통제가 극심했다고도 토로했다.

2014년 탈북한 30대 여성 탈북민 C 씨는 "한국에 대해 발언 한 마디 하면 잡혀가서 혼나니까 한국을 '무서운 나라'라고 생각했다"며 "(2010년대부터는) 한국 드라마, 영화를 가만가만(몰래몰래) 보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다"고 말했다. 탈북민 B씨도 "한국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북한 관영) TV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현실을 보게 됐다"며 "한국 드라마를 통해 '아, 한국에는 인권이라는 게 있구나'라는 걸 듣게 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북한 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하나원이 개원 24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하나원 직업교육관에서 북한 이탈주민들이 제과 제빵 교육을 받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면서 "한국에선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차이가 엄청 심하다는 말도 들었다"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있겠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분 찾아 韓으로


북한 당국의 통제와 굶주림을 피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은 중국에서 신분을 보장 받지 못했던 당시의 설움도 털어놓았다. "한국에 와서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면서다.

탈북민 C씨는 "중국에서 불법으로 있다 보니 안전이 보장되거나 사회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탈북민 A씨도 "신분이 없다 보니 일을 해도 중국 사람의 절반 가격을 받으며 일해 억울한 감이 들었다"며 "코로나19 때문에 바깥 출입도 못하고 사는 게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탈북민 B씨 또한 "중국에선 신분증이 없어 병원 가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함께하며 탈북민과 오찬 간담회를 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한 인권, 탈북민 정착 지원·보호에 대해선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라며 "탈북민의 성공이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스토리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0일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하나원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공급망 무너져 아사자 발생"


권 장관은 북한의 식량난 상황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지난해 북한의 작황이 좋지 않았고 식량 배급 과정에서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통제하다 보니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도 발생하고 또 아사자가 발생하는 지역도 넓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 지도부도 나름대로 기본적인 식량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굉장히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 생각해서 중국 등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해 조금 진정은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0일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하나원의 하나의원에서 입소자가 치과 치료를 받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한편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가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에서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한 데 대해 권 장관은 "윤 대통령이 1년 동안 (북한을) 쭉 지켜봤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이 전혀 변화할 생각을 안 하고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고, (남북) 통신선까지 끊는 모습을 보면서 통일부의 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고려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대화를 하더라도 원칙에 맞게 해야지 지나치게 유화적으로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배 하나원 원장이 10일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통일부.


"진로 정할 수 있게 지원"


하나원은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이 3개월간 머물며 교육을 받는 장소다.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민 규모는 2018년 1137명, 2019년 1047명 등 1000명대를 기록하다가 코로나 발발 이후 2020년 229명, 2021년 63명으로 대폭 줄었다.

지난해 67명으로 소폭 반등했는데 올해는 지난 3월 기준으로 34명의 탈북민이 국내에 입국해 연말에는 세자리수를 회복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하나원은 탈북민 건강을 위한 시설인 하나의원, 마음건강센터와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직업교육관, 컴퓨터실습실, 정보통신(IT)체험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정배 하나원장은 "탈북민이 하나원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게 본인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하나원은 헤어·네일아트, 메이크업·피부미용, 관광·판매사무·호텔, 간호·요양, 요리·제빵, 전자 기초, 기계 조립, 봉제·수선·세탁 등 다양한 진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10일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에서 하나원 관계자가 IT체험관을 설명하는 모습. 체험관에는 컴퓨터를 비롯해 AI스피커, 공유기, 블루투스 기기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근에는 "정착에는 IT가 필요하다"는 모토로 정보화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원 관계자는 "수료 전까지 최소한 자신의 이력서 등 문서를 작성할 능력을 키우게 된다"며 "워드프로세서 2급 정도의 실력을 갖춰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국내 입국하는 탈북민 수가 줄면서 하나원 시설에 여유가 생기자 이미 사회에 진출한 탈북민이 다시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심화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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