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비행 담은 몰카, 교내재판에서 벌어진 일

김성호 2023. 7. 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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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07] 제27회 BIFAN <심판>

[김성호 기자]

제가 남보다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많은 경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옳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언제나, 또 모두가 그러한가. 제가 옳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례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마주하는가 말이다.

누군가는 제가 정의롭다고 믿는다. 또 누군가는 제가 정의를 수호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정의로움이 정의가 아닌 무엇이라면, 정의를 지키려는 자의 태도가 정의로움과 거리가 멀다면 그건 정의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운다고 표방해온 조직들, 이를테면 검찰이나 경찰이 정의롭지 못한 행태를 저질렀던 사례는 얼마나 많았던가. 증거와 증언을 조작하고, 가해자가 아닌 이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낳은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마주했었다.

재심을 거쳐 뒤바뀐 진실을 혹자는 '지연된 정의'라 명명하였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와는 거리가 있는 무엇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바로잡힐 기미조차 없는 여러 사건들, 같은 죄를 저지르고도 누군가는 조사조차 받지 않고 또 누구는 엄벌에 처해지는 그런 사례를 이 사회에선 빈번이 마주하게 되곤 하는 것이다.
 
▲ 심판 포스터
ⓒ BIFAN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을까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에 소개된 <심판>은 관객을 이 같은 사유로 몰아가는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하려 드는, 또 그로부터 그 스스로가 심판을 받게 되는 이 이야기의 배경은 어느 고등학교가 되겠다.

학교엔 여러 종류의 학생이 있다. 누군가는 모범생으로 여겨지고 또 누군가는 불량한 학생으로 치부된다. <심판> 속 인물들도 그러한데, 모범생으로 여겨지는 나연과 불성실한 학생 건우가 그렇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연이 건우의 비행을 목격하며 시작된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소각장으로 향하던 나연은 그곳에 먼저 와 있던 건우를 발견하고 몸을 숨긴다. 건우는 그곳에서 다른 학생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돈을 받고 담배를 판다. 담배를 구해 웃돈을 받고 파는 일은 당연히 교내에선 금지된 것으로, 나연은 이 불온한 거래를 몰래 카메라에 담는다.
 
▲ 심판 스틸컷
ⓒ BIFAN
 
교내재판에 선 두 학생

이야기는 이내 다음 장면으로 건너간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엔 특별한 제도 하나가 있는데, 다름 아닌 교내재판이다. 규칙을 어긴 학생들을 자치 재판정에 세워 재판을 하고 그에 맞는 처벌을 하는 것이 교내재판의 골자다.

건우를 재판정에 세운 나연은 검사역을 맡게 되고 건우는 직접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그로부터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되어 정의와 정의 아닌 것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사람은 어떻게 더 못한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내보이기에 이른다.

영화는 스스로가 정의롭다 여겼던 나연이 건우에게 징계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는다. 교내에 담배를 반입하고 그것을 퍼뜨리는 행동을 차단하기 위하여 어떻게든 증거를 마련하려는 나연의 열정이 마침내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기까지의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다뤄진다. 정의에 대한 열정이 집착이 되고 부정의한 것에 대한 분노에 이르는 과정이, 또 정의와 부정의를 나누는 그 모호한 기준이 모두 영화에 흥미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
 
▲ 심판 스틸컷
ⓒ BIFAN
 
아이들의 영화에서 어른들의 세상을 읽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비단 교내재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어서 영화는 더욱 흥미롭게 여겨진다. 아이들이 겪은 갈등과 심리적 상태를 관객들은 어른들의 사회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문제가 커다란 사회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검찰공화국이란 자조 섞인 비판을 듣는 오늘의 한국에서 이와 같은 영화가 지닌 문제의식은 더욱 날카롭고 유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무엇을 판단하는 일은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해 필수적이라 하겠다. 더 적극적이고 정밀한 판단이 인간을 더 나은 지평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그러나 섣부르거나 왜곡된 판단은 다른 인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판단을 넘어 심판이라 부를 일이라면 그 상처는 더욱 치명적인 무엇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남윤희 감독의 대학교 졸업작으로, 불과 17분의 짧은 단편인 <심판>은 그래서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다. 한국사회는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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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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