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 미술의 최초를 엿볼 수 있는 곳
[김형순 기자]
▲ 김구림 I '구겐하임을 위한 현상에서 흔적으로' 종이에 연필 29.7×42cm 2021. 작가소장. 김구림 1970년 '경복궁(국립미술관)'을 일금 '900만원'짜리 라며 시신을 염하듯 흰 광목으로 포장하면서, 한국미술의 새 출발을 촉구했듯, 뉴욕에서 이런 의도로 '구겐하임'미술관을 천으로 장례 치르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미술관으로 거듭나는 의례를 통과시킨다면, 정말 흥분되는 최고의 '한국실험미술'전이 될 것이다 |
ⓒ 김구림 |
1963년 '백남준' 독일 첫 전시에서 도살된 소머리가 등장한 건 서양미술의 목을 날린 것이고, 1965년 '보이스' 죽은 토끼와 한 퍼포먼스는 서구 우월주의를 비판한 것이고, 1968년 한강에서 열린 '한강변의 타살'은 부패한 한국미술을 땅에 장례시킨 것이고, 1970년 김구림이 국립미술관을 광목으로 싸 쓰레기처럼 버린 것. 이런 게 다 미술혁명을 위한 '실험정신'이다.
이번에 이런 1960-1970년대 한국실험미술을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공동기획한 서울 MMCA(2023.05.26~2023.07.16), NY 구겐하임미술관(2023.09.01~2024.01.07), LA 해머미술관(2024.02.11~05.12)에서 순회전으로 9개월간 열린다. 국립 '강수정' 학예연구관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안휘경'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와 공동기획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1960년대부터 압축적 근대화 산업사회의 과정을 겪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68혁명, 반전운동, 페미니즘' 등이 일어났다. 반면 우리는 경제 발전 논리와 사회정치적 억압이 충돌하면서 부딪친 신구세대의 전환기에 한국에서도 '실험미술'이 일어났다.
▲ '국립중앙공보관(National Information Center)'에서 열린 '한국청년미술가연합전'에서 선보인 정강자 작품 '키스미'(1967). 이 작품 앞에서 선 한국의 실험미술가들 오른쪽부터 강국진, 심선희, 김인환, 정찬승, 정강자, 양덕수 |
ⓒ 국립중앙공보관 |
위 작품 보듯 여자가 저렇게 큰 입술에 이를 드러낸다는 것은 당시로는 도발이었다. 당돌한 정강자는 많은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남성의 성적 시선의 왜곡을 넘어, 여성 주체적 성적 욕망'을 선포했다. 그녀는 이렇듯 표현이 최우선이었다. "우리의 작업은 실험, 무에서 출발 창조만을 위한 행동"이라 선언한 '무동인'의 동인으로 이를 지지했다.
"우리는 사회,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고, 그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쏠려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부정적으로 보려는 사회적 시선을 오히려 가시화했다. 또 그녀는 누드를 하나의 오브제로 봤기에 1968년 '세시봉'에서 '투명풍선과 누드'라는 작품을 발표했고 많은 오해와 빈축을 샀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서 첫 페미니즘 작품인 셈이다.
▲ 강국진, 김영자, 김인환, 문복철, 심선희, 양덕수, 이태현, 정강자, 정찬승, 진익상, 최붕현 1967. 국립중앙홍보관에서 열린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황양자 기증 |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
김영자가 의자에 앉아 비닐우산을 펼침과 동시에, 나머지 작가는 의자를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돈다. 이들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부르며 촛불에 불을 붙여 우산에 꽂았다. 원을 그리던 이들은 촛불을 끄고 달려들어 우산을 찢은 후, 이를 밧줄로 감아 밟으며 해프닝을 끝난다. "우연적 행위와 물체와의 충돌에서 일어난 미적 사건의 체험이다"라는 해설도 덧붙였다.
▲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I '한강변의 타살'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소장 |
ⓒ 황양자, 정강자 |
1968년 10월 17일 제2한강교(양화대교)에서 한국 미술계 파란을 일으키는 획기적 해프닝이 벌어졌다. 제목은 '한강변의 타살'이다. 그해 초, 북한에서 내려온 김신조 사건 등으로 냉동기였지만, 한국미술계 기성세력을 가차 없이 비틀고 조준한 장례 형식의 이벤트였다.
▲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I '한강변의 타살'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소장 |
ⓒ 황양자, 정강자 |
이런 해프닝이 얼마나 창의적 연출이었는지 궁금해진다. <경향신문>을 보면 그날 하오 4시 제2한강교 아래 백사장에서, 3명의 작가와 주변인이 삽 3개, 양동이 3개, 색 비닐 천, 성냥, 휘발유 1동, 가위, 흰 페인트 붓, 사인펜의 재료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작업 순서를 보면 1) 삽으로 구덩이를 파서 기다란 비닐 천을 몸에 감고 모래 구덩이에 들어가 목만 내놓은 다음 2) 관중이 물총을 쏘면 3) 도로 일어나 품고 나와서 비닐을 걸치고 4) 흰 페인트로 각자가 몸에 걸친 비닐 천 위에 문화고발장을 쓴 다음 5) 관중에게도 메모지를 배부, 고발장을 쓰게 하고 6) 이 고발장을 다시 읽은 후 태워 버리는 식이다.
▲ 김구림 I '1/24초의 의미', 1969, 16mm 필름, 무음, 9분 14초. 김구림이 감독과 편집, 정찬승, 정강자 출연 및 제작 |
ⓒ 김구림 |
'1/24초의 의미'는 뭔가? 작가는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려면 1초 동안에 필름 24컷이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이고, 세계미술사에 독보적 작품이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실험영화가 나왔는지 믿기 어렵다. 급격하게 근대화를 거치는 서울의 역동적 삶과 그 이면의 권태 등도 시각적으로 몽타주 했다.
같은 해 해외에서 '백남준', 김구림과 연합해 참가했다. 마침 '제1회 서울 국제현대음악제(9월 5일)' 열렸다. 백남준 작곡, 김구림 연출 '피아노 위에 정사'다. 두 남녀가 벌거벗고 피아노 위에서 연주가 아니라 정사를 하는 센세이션한 작품이다.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명동 '국립국장'에 1회만 공연했다. 정찬승과 차명희가 이 해프닝 포퍼머로 등장했다.
▲ 이강소 I '소멸-화랑 내 술집' 1973(2018 인화), 종이에 디지털 크로모제닉(chromogenic) 프린트, 78.7×108.8cm(10) |
ⓒ 이강소 |
개막식 사진을 보면, 낯선 사람과 미술가 김구림, 정찬승, 평론가 김인환, 유준상 등이 어울리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방문객이 평범한 삶에서 덧없는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게 작품의 주제였다. 이강소는 "저는 그들에게 뭔가를 표현한다기보다는 뭔가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한다.
이강소는 당시 술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사들여 설치하고 막걸리와 안주를 제공했다. 그는 심지어 메뉴가 적힌 세움 간판도 설치했다. 또 그는 박제된 동물과 썩은 물고기를 작품에 포함하거나 강둑의 갈대를 전시 공간으로 가져오곤 했다.
▲ 다니엘 아바디, '파리비엔날레'의 '제2의 바람' <뢰유(L'OEIL)> 219호 1973년 10월호, 피지와 그 안 내용 |
ⓒ 이건용 |
'신체항'은 1971년 작으로 2년 후 제8회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되다. 당시 파리비엔날레 소식지에 이 작품이 소개되었다. 뒤샹은 오브제 전시장에 놓는 게 현대미술로 봤는데 '뒤샹'의 정신이 담겨 있다. 여기서 나무가 형식미를 갖춘 예술품이 되는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다.
현지 언론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은 실제로는 볼 수 없었던 바깥지층을 보이는 구조물로 미학의 공간에서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과 그걸 넘어 관객의 시각 차원을 바꾸는 하나의 선언으로 본 것이다. 작가도 권위주의와 거드름을 피워댔던 미술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영역과 그 틀을 확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 성능경 I '사과(1976)' 종이에 젤라틴 실버 프린트에 유성 마커펜 24×19.3cm(17)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장준호, 설치 사진: 임장활(스튜디오, 보우). 아래 '여기(1975)' |
ⓒ 성능경 |
그의 작품은 마침 1974년 12월 동아일보 백지 광고사태와 오버랩된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언론 탄압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기로 했던 회사들이 무더기로 해약하고, 그 결과로 광고를 채우지 못해 백지로 내보내거나 아예 전 지면을 기사로 채워지기도 했다.
그는 위 '작품처럼 매체로써 사진 작업을 도입한다. 이를 통해 물질 너머의 예술소통으로 기성통념을 깼다. 이밖에도 '이승택, 하승조, 하종현, 송번수, 심문섭, 김영진, 박현기' 등 작가가 많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이들은 이렇게 20세기 한국미술을 빛내는 공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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