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암흑, 니 속이 궁금해"…2조짜리 망원경 쐈다
우주 95% 암흑물질·암흑에너지 탐사
20세기 들어 양자과학과 상대성 이론으로 무장한 현대 물리학은 원자의 존재를 알아내고 우주의 진화를 추적하는 등 완성 단계에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 알고 보니 인류가 여태까지 알아낸 것은 고작 우주의 5% 미만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물질, 즉 원소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존재만 확인됐을 뿐 보이지도 않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물질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지난 50년 새 현대 물리학에서 ‘암흑물질(dark matter)’과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주요 연구 과제로 등장한 이유다.
암흑물질은 은하의 무게를 재보려는 과학자들의 도전에서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도무지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크기인 은하의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첫 번째는 은하의 밝기를 보고 별들의 개수를 파악하는 것으로 광도 질량(luminosity mass)이라고 한다. 또 은하에서 회전하는 별들의 속도를 재서 중력의 세기를 파악, 질량으로 환산하는 방법도 생각해 냈다. 이는 역학적 질량(dynamical mass)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과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똑같은 은하의 무게를 쟀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역학적 질량을 측정했을 때의 값이 광도 질량보다 4~5배 이상 컸다. 여기에서 과학자들은 빛을 발하지 않지만 은하들의 내부에 가득 차 있는 어떤 물질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1933년 스위스의 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처음 주장했다. 그는 지구에서 3억2000만 광년 떨어진 코마 은하단(머리털자리)을 관측하다가 은하단 외곽의 은하들이 예측치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은하단의 가운데로 갈수록 질량이 무겁기 때문에 빠르게 회전하고 바깥쪽일수록 천천히 회전한다는 가설과는 전혀 달랐다. 이에 츠비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중력에 작용하는 물질이 존재해야 설명이 가능하다며 이를 ‘보이지 않는 물질(invisible matter)’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학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미국의 물리학자 베라 루빈이 암흑물질의 존재를 입증하는 연구를 발표하면서 ‘대세’가 됐다. 루빈은 우리 은하 내부의 별들의 속도를 측정했는데 역시 처음엔 중심부의 속도가 빠르고 외곽은 느릴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속도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0여개의 다른 은하들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암흑물질’의 존재가 없이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었다.
또 강력한 중력을 가진 은하가 빛을 굴절시켜 배경 천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중력 렌즈 효과’, 왜소 은하의 빠른 회전 속도, 은하단의 충돌 시 발생하는 총알 은하단 현상, 우주의 거대 구조, 우주배경복사 등의 현상도 암흑물질의 존재를 간접 입증한다. 은하가 별·가스·우주먼지 등 우리가 기존 장비로 관측할 수 있는 일반 물질로만 이뤄져 있고 나머지는 텅 비어 있다면 도무지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관측 결과 우주는 원자,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물질은 약 5% 미만에 불과하며 암흑물질이 이보다 4~5배 많은 약 25%, 암흑에너지가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흑물질, 별과 은하를 만들었다
암흑물질은 우주대폭발(빅뱅) 이후 초기 우주에서 별과 은하가 생성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우주 거대 구조론, 우주배경복사론 등이다. 우주는 빅뱅 38만년 후 급팽창하면서 식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빠르게 팽창하다 보니 우주 전체에 위치와 상관없이 열에너지가 균일하게 분포하게 됐다. 이른바 우주배경복사의 등방성(等方性) 이론이다. 실제 WMAP 위성, 플랑크 위성 등을 통해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 결과 우주 전체는 골고루 열에너지가 분포돼 있었다. 그러나 가장 뜨거운 곳과 차가운 곳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초기 우주에도 물질이 더 많이 모인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물질들이 오랜 시간 동안 중력에 의해 뭉치고 쌓이면서 별과 은하가 생성됐다. 즉 초기 우주의 불균형한 물질 분포가 별·은하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 역시 벽에 부딪혔다. 우주의 5%에 불과한 일반 물질로는 그만한 중력이 발생할 수가 없다. 현재의 우주 역사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암흑물질이 별·은하를 뭉치게 만든 중력을 제공했기에 가능했다는 게 천체물리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암흑물질은 아직도 정확한 실체가 포착된 적이 없다.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수십 년째 지하, 남극 등에서 검출기를 만들어 놓고 연구 중이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엑시온, 비활성 중성미자, 윔프, 김프, 원시블랙홀 등 6가지 후보 물질만이 이론적으로 제안됐을 뿐이다. 다만 성질은 어느 정도 파악된 상태다. 가시광선은 물론 어떤 전자기력과도 상호작용이 없거나 지극히 약해 볼 수가 없다. 우주 탄생 때부터 존재해 온 오래되고 안정됐다. 중력과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질량을 갖고 있고, 빛보다 느리고 무겁고 차가운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강원도 정선 지하 1000m에 검출기를 갖춘 예미랩을 설치해 암흑물질 관측에 나서고 있다. 카이스트(KAIST)도 엑시온을 연구 중이다.
암흑물질보다 더 많다는 암흑에너지는 전혀 다른 존재다. 일반 물질을 뭉치도록 해 별과 은하를 만든 게 암흑물질이라면 암흑에너지는 정반대로 우주를 팽창시키는 반중력 에너지다. 1998년 솔 펄머터, 브라운 슈미트 등의 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이 꾸준히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점점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정한 밝기를 가진 초신성을 활용해 아주 먼 거리의 은하계의 거리를 측정, 우주팽창률을 계산했더니 점점 빨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우주 전체의 진공에 보이지 않고 측정되진 않지만 팽창을 가속화하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가설로 이어졌고, ‘암흑에너지’로 명명됐다. 다만 암흑에너지 가설의 토대가 된 초신성 밝기를 이용한 우주 거리 측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반론이 나오는 등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상황이다.
이 같은 암흑물질·암흑에너지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는 활발하다. 지난 2일 유럽우주청(ESA)이 발사한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이 대표적이다. 15억달러(약 1조9500억원)를 들여 만든 첨단 우주망원경이다. 대형 가시광선관측기(VIS)와 근적외선 분광계·광도계(NISP)를 이용해 2029년까지 하늘의 3분의 1 이상에 걸쳐 분포하는 최대 20억개 은하를 관측해 사상 최대의 3D 우주 지도를 작성하는 게 핵심 임무다.
이보미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우주 전체의 2~3%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암흑물질·암흑에너지로 이뤄져 있다"면서 "고분해능을 갖춘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먼 거리의 은하계들을 관측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해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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