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석사논문 부친 까닭

김경준 2023. 7. 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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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강 문일민 평전] 에필로그 ③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 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 앞으로 부친 석사학위논문
ⓒ 김경준
 
수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2길 **
수신자: 문재인 전 대통령

석사학위논문 <무강 문일민의 생애와 민족운동>을 완성한 뒤 문일민 선생 후손과 지인들에게 논문을 부쳤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퇴임 후 양산 평산마을 자택에 거주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앞으로도 정성스레 쓴 편지 한 통과 함께 논문을 발송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논문을 보낸 이유

2019년 3월 제100주년 삼일절 기념식 당시 문일민 선생의 손자가 단상 위에 올랐다. 문일민 선생의 부인 안혜순 선생이 사후 13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서훈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은 것이다. 
 
 2019년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고 안혜순 지사의 아들 문국진 씨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혜순 선생은 1905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났다(국가보훈부 공훈록에는 1903년으로 기재돼 있으나 후손들의 증언에 의하면 1905년이 맞다고 함).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한 남편 문일민 선생을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부인들로 구성된 '한인애국부인회'에 참여해 각종 기념일에 기념 전단을 인쇄·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 평소 음식 솜씨가 좋아 임시정부 요인들을 위해 식사 뒷바라지를 하곤 했는데, 윤봉길 의거 전날 김구 선생의 부탁으로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으로 먹을 도시락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2006년 별세 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먼저 조성돼 있던 남편과 합장됐다.

안혜순 선생이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독립유공자 서훈 정책 덕분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총칼과 폭탄을 들고 직접 투쟁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독립운동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것 또한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고, 이에 따라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을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안혜순 선생 역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서훈 정책의 수혜자 중 한 명이었다.
  
 독립운동가 안혜순. 2023년 광복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전시에 남편 문일민 선생과 함께 나란히 소개됐다.
ⓒ 김경준
 
비록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의열단 단장·조선의용대 대장·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했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진 역시 독립유공자 서훈에 있어 이념의 장벽을 허물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보여줬다.

이처럼 독립유공자 서훈을 비롯해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선양 및 처우 개선에 앞장 섰던 문 전 대통령에게 독립운동사 전공자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문 전 대통령에게 석사논문을 부친 이유다. 다음은 당시 논문과 함께 동봉한 편지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김경준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독립운동가 무강 문일민 선생의 삶과 민족운동을 주제로 논문을 완성하게 되어 대통령님께 한 부 보내드립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임기 중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방문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 대한 예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바 있습니다. 실제로 퇴임 직전 대통령님께서 전격적으로 추진하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은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이 느껴지는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에서 독립운동가 발굴에 더욱 노력한 결과 역사의 그림자로 가려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제 논문의 주인공인 문일민 선생의 부인 안혜순(安惠淳: 1905~2006) 선생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와 비로소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그들 모두의 삶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닙니다. 문일민·안혜순 선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일민 선생은 1920년 8월 3일 일제 식민통치 기구인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지고 탈출,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입니다. 또 해방 후에는 통일정부 수립을 호소하며 미군정에서 할복 자결을 시도했을 정도로 우국충정으로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안혜순 선생 역시 독립운동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그 자신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이었습니다. 제 석사학위논문은 주류 독립운동가들에 가려진 채 소외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업적을 발굴하여 널리 알려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목표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재임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발굴과 선양에 앞장섰던 대통령님처럼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선양하는 일에 힘쓰고자 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논문이지만 대통령님께서 의미 있게 읽어주시고 문일민 그리고 논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들을 기억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통령 내외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대한민국 104년(2022년) 7월 25일
김경준 드림

거꾸로 흘러가는 역사

그러나 역사는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껏 끌어올려놓은 보훈정책의 수준이 윤석열 정부에서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14일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수유리에 있던 한국광복군 17위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또 올해 4월에는 미국에 잠들어 있던 황기환 지사의 유해가 극진한 예우 속에 고국으로 봉환돼 역시 대전현충원에 잠들었다.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예우를 다하는 모습에 내심 기대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예우에 좌와 우, 민주당 정권과 국민의힘 정권이 어디 있겠나. 특히 올해 6월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된 만큼 달라진 위상에 맞게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 더욱 힘써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행보는 모두 기만에 불과했던 걸까. 최근 들어 국가보훈부의 행보가 엉뚱한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다. 지난 3일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뜬금없이 "가짜 독립유공자는 용납할 수 없다"며 기존에 서훈된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재검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항일운동 했다고 무조건 오케이(ok)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설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 만드는 데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일 대한민국 국민이 누가 있겠습니까?" - 박민식 장관 페이스북 게시물 중(7.3.)

물론 북한 김일성 정권에 참여하여 6.25 전쟁 수행에 기여한 전범들에 대해서만큼은 나 역시 서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이라는 대목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조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다시 이념의 잣대로 독립운동의 기준을 평가하겠다는 구태적 발상이다.

박민식 장관의 행보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5일에는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정보에 수록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백선엽뿐만 아니라 서울·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신태영, 신현준, 이응준 등 다른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들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출범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선정된 '국가공인 친일파'들이다. 그런데 박민식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친일파들에게 제멋대로 면죄부를 부여하며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둔갑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6일 그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에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면서 장관직까지 걸었을 때는 그야말로 할 말을 잃었다. 백선엽이 몸 담았던 간도특설대가 어떤 조직인지 정녕 모르고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식밖의 반역사적 행보에 그야말로 점입가경, 목불인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친일파 군홧발 아래 잠든 문일민

문일민·안혜순 두 분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참배하러 갈 때마다 늘 착잡한 심정이다. 바로 그 위에 조성된 '장군제2묘역'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응준, 신태영 등 국가공인 친일파들이 잠들어 있다.

장군제2묘역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탄식이 절로 쏟아진다. 문일민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독립운동가·의병들의 묘역이 고스란히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친일 황군들의 군홧발 아래 독립운동가들이 잠들어 있는 형국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잠든 국립서울현충원 장군제2묘역에서 내려다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
ⓒ 김경준
 
해방 후 조국에 돌아온 문일민 선생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친일파가 애국자 행세를 하고 해외에서 일제와 맞서 싸우다 돌아온 독립운동가들은 오히려 조롱 당하는 현실이었다. 그가 분노해 중앙청(미군정)에서 스스로 배를 가른 까닭이다. 자신의 할복으로 현실의 부당함을 성토하고자 했던 것이다(중앙청 할복 의거의 배경과 전개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 연재 <무강 문일민 평전> 21~23화 참조, https://omn.kr/21bxn ).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친일파를 영웅으로 둔갑시키면서 정작 독립운동가들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밀어 '가짜 독립운동가'로 치부하는 현실을 보니 문일민 선생이 중앙청 할복 의거를 감행하던 그때로 회귀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스스로 배를 가르면서까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문일민 선생이 2023년 대한민국을 보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아마 당분간은 문일민 선생 묘역에 참배하러 가기 어려울 것 같다. 도저히 선생을 마주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 에필로그 ④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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