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도서관 여행,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노정임 2023. 7. 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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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임 기자]

▲ 금암도서관 내부 외관과 달리 현대적인 금암도서관 내부. 철제 프레임이 한옥문의 격자무늬를 연상케 한다.
ⓒ 노정임
글쓰기 모임 회원들과 전주 지역 도서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작년 이맘때 한 번 와 본 곳이라서 감동은 처음만 못할 거라 짐작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세부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 건의할 내용을 찾아보자고 나만의 목표를 잡았다.
처음 방문한 금암도서관은 구도심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평범하고 다소 노후 돼 보이는 외관과 달리 실내 인테리어는 완전 현대식이다. 철제 프레임으로 전통문의 격자무늬를 연상시키는 실내도 독특하고 무엇보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압권이다. 탁 트인 이 곳에서 하늘을 보며 책을 읽는다면, 글을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
 
 금암도서관1층
ⓒ 노정임
금암도서관의 이색프로그램은 '책의 정원에 美를 심다, 도서관 내 미술관'과 야간 프로그램인 '달빛 공연'이다. 매월 지역 작가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마지막 주에는 작가 초청 강연을 연다고 한다. 7월에는 선면화(부채 위에 그린 그림) 작가 유명기의 <량풍과하-멋과 풍류로 시원한 여름나기>, 8월은 이용석 작가의 <정원-꿈>, 9월은 송지호 작가의 <내 안의 행복> 등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또 도서관 트임마당(옥상)에서 클래식과 국악을 즐길 수 있는 '야간프로그램 달빛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초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달빛 조명아래에서 하는 음악 공연이라니 감상하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에게 모두 잊지 못할 밤이 될 것 같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책과 독서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 음악 등 다른 문화 영역과 공유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물론 다른 도서관들도 이런 문화 행사를 진행하지만 1회성 단발 행사인 경우가 많았다. 금암 도서관처럼 중장기 계획으로, 도서관의 특색 사업으로 꾸준히 이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금암도서관 옥상.
ⓒ 노정임
두 번째로 찾은 도서관은 전주시청 1, 2층에 자리한 책기둥 도서관이다. 들어서는 순간 이름처럼 거대한 책기둥이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보통은 자신들의 자랑거리 몇 개 전시하며 휑하니 넒은 공간으로 놔두기 일쑤인 관공서 1층인데 누구의 아이디어로 이렇게 알차게 쓰이는지 존경심이 일었다.

"책은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도끼이자 우리 삶을 단단하게 떠받치는 기둥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 있던 문구)

일터를 향하는 공무원이나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은 민원인들이 위 문장을 읽으며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기둥 도서관은 곳곳에 재미있는 보물을 숨겨두었다. 생일 책장에는 생일 맞은 시민에게 그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전시, 소개하고 있었다. 내 생일인 9월 6일은 독일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생일이라 했다. 누군지 잘 모르지만 왠지 동질감이 생겨 언제고 그의 책을 읽어보리라 작은 다짐을 해 보았다.

'시 항아리'라는 또 다른 보물을 찾았다. 외롭고 지치고 우울하고 낙심한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길 바라며 좋은 글과 시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둥근 항아리에 둥글게 말린 종이들이 꽂혀있었다. 선물을 고르는 설렘으로, 나에게 주는 위로가 뭘까 기대하며 나도 하나 골랐다.
 
▲ 책기둥도서관 전주시청 1층 로비는 도서관이다
ⓒ 노정임
도서관 2층을 올라가니 동네책방이 추천하는 책 코너와 독서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예쁜 스탠드가 놓인 책상이 있다. 잠깐 앉아서 박노해 시인의 시 그림책 <푸른빛의 소녀가>를 보았다. "지구에서 좋은 게 뭐죠?" "꽃과 나무요. (...) 사랑,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요."

책기둥 도서관에서 내가 찾은 보물들은 나에게 진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좋았다. 작고 따뜻한 배려로 잔잔한 기쁨을 느끼게 했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라면 도서관의 진정한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방문한 학산 숲속시집도서관은 공간 자체가 힐링이었다. 야트막한 산을 오르며 여름의 향을 힘껏 들이마시다 보니 만나게 된 작은 호수, 그리고 숲속 오두막 같은 작은 도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 앞에 솟아 있는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만든 입구는 통행에는 약간의 불편이 있겠지만 자연을 덜 훼손시키려 노력한 의지가 보였다.

넓은 통창과 서가 사이사이의 창문들로 사계절을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초록의 산과 초록의 호수, 유치원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귀여운 몸짓들이 자꾸 나의 관심을 끌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시(詩) 특화 도서관으로 출판사별, 주제별, 시인별로 전시 공간을 구별해 두었다. 창가에 자리한 책상에서 시인의 마음을 느끼며 모방시를 쓰거나 필사를 할 수도 있다. 또 매월 시인을 초대해 특강을 듣고, 시낭독 교육, 숲속 낭독 공연 등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힐링의 시간을 제공한다고 한다.

학산 도서관에서 생소한 기계를 만났다. 공기 청정기인가, 책 살균기인가 싶은 네모 반듯한 외관의 이 기계는 '시 자판기'라고 했다. 관심사를 묻는 질문 두어 개에 답을 하면 운세를 봐주는 듯 기계에서 시가 나온다. 나는 윤동주의 '자화상'을 받았다. 일행들도 저마다 시를 받으며 어쩜 본인에게 딱 맞는 시가 나왔다며 하하호호 즐거웠다. 우리 글쓰기 모임의 선생님이신 전재복 시인께서 본인이 받은 시를 멋지게 낭독해주셔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셨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시집을 꺼내 읽고, 그저 앉아서 바깥 경치를 즐기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시간을 즐겼다. 나는 신기한 자판기를 한 번 더 이용해서 받은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하인리히 하이네)'를 필사했고 감사하게도 사서 선생님이 입구에 전시해 주셨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책기둥 도서관에서 받은 시 선물을 펼쳐보았다.

짧은 심사평 (천양희)

나무들이 바람을 남기듯이
시간이 메아리를 남기듯이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듯이

불 켠 듯 불을 켠 듯
그림자는 늘 자신 뒤에 있을 것이니
그대는 행성이 아닌 항성

장래가 천천히 눈부셔지길 바란다

'가까운 곳에 이런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쉽다. '이런 곳이 있으면 책을 많이 읽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신 우리 동네 도서관을 언제 방문했던가 헤아려보자. 일상의 분주함에 쫓겨서, 또 집에 있는 책을 우선 읽자며 도서관 방문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나?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보물 같은 책과 생각지도 못한 프로그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남의 동네 화려함을 부러워하지만 말고 우리 것을 잘 활용해야겠다. 기회 되면 전주 도서관에서 얻은 좋은 아이디어들을 건의하고 우리만의 독특한 프로그램도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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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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