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가 있어서 발달장애인 수업을 합니다

김준정 2023. 7. 1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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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정 기자]

 찰흙 위에 만든 미니 정원
ⓒ 김준정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는 예술가'는 추진장애인자립장 회원들과 미술공감채움 작가들이 함께 미술 수업과 산책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곳에서 첫 번째 산책을 하는 날이다.

나는 두 달 전부터 산책코스를 찾아 월명산 구석구석을 뒤져서 한 곳을 발견했다. 주차장에서 십 분 정도만 걸으면 올 수 있고, 그늘진 넓은 터에 꽤 큰 정자와 지붕이 있는 테이블, 의자가 있어서 회원들이 간식을 먹거나 미술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장 중요한 화장실도 있고, 폭신폭신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서 얼마쯤 걷다가 다시 돌아오면 될 것 같았다. 나는 이곳을 보여줄 생각에 신나서 가고 있는데, 수현씨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오늘 카페 가는 줄 알고 기대했는데."

내가 물었다.

"실망했어요?"
"저는 산에 오면 어지러워요."
"그래요? 제 팔 잡아요."
"제가요, 산에 가는 거 말고는 어떤 활동이든 다 잘할 수 있거든요? 근데 산은 싫어요.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요."     

앞으로 다섯 번은 더 산에 가야 하는데 큰 일이다. 하지만 수현씨가 흥분할 것 같아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미리 물어볼 걸 그랬네요."
"산 말고 다른 건 진짜 다 잘해요. 근데 산은 싫어요."

수현 씨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알았어요. 선생님들하고 의논해 볼게요.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요."

20분 정도 걷고 난 후, 나는 수현씨를 벤치에 쉬게 했다.      

"피곤할 때 먹어요."

주광씨가 박카스를 내밀었다. 주광씨는 나한테 전화번호를 세 번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메모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줬지만, 전화가 온 적은 없었다. 주광씨가 휴대폰이 없어서인지, 전화하는 걸 잊어버려서인지 모르겠다.

용현씨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주머니에서 믹스커피를 쓱 꺼내서 주었고, 유진씨가 "선생님 전화번호 선우가 알고 있어요"라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회원들이 나에게 커피와 박카스를 주거나 나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 하는 게 마치 내가 예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하는 행동과 비슷했다.

추진자립장 회원들과 만난 지 3년째다. 이전에 회원들이 다른 선생님에게 박카스와 커피를 주는 것은 봤지만, 나는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전화번호를 물어보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회원도 없었는데, 올해부터 생긴 변화다.
 
 회원들과 활동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월명산)
ⓒ 김준정
오늘 연언니는 개인전 때문에 못 오고, 다른 선생님들도 일정이 있어서 참석을 못했다. 추진자립장 문 선생님과 사회복무요원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나 혼자 수업을 진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벅차지 않았던 이유는 회원들이 나를 친근하게 대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변화가 반가웠다. 그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어서 돌아보니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나를 바꾸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반복될, 이건 책을 읽거나 다짐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자각이 일었다. 낯설었던 존재와 거리를 좁히고 편해지는 경험이야말로 나에게서 벗어날 수 기회였다.

나는 과외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가끔 나를 지치게 한다. 추진 회원들과의 수업은 나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어떤 일을 대가 없이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는 생계를 위한 일도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한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균형 있게 살고 싶다.

사실 추진회원들과 수업한 이야기를 쓰고 나중에 읽어보면 글 속에 내가 미화되어 있어서 불편했다. 스스로 위선적이라는 생각에 쓰다가 그만둔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를 뺀 선생님들은 모두 미술작가여서 내가 우리의 활동과 회원들의 이야기를 (시키는 사람은 없지만) 기록하고 싶었다.

이 글도 처음에는 미담으로 끝나는 게 싫어서 있었던 사실만 나열해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보냈다. 그랬더니 편집기자가 전화가 와서 글에서 전달하려는 게 뭔지 안 보인다고 했다.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도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나의 고민을 얘기했고, 편집자가 말했다.

"기자님 말을 들으니 이해가 돼요. 글 속에서 자신이 미화되는 게 불편하시다는 거죠?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지점일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 지금 이 이야기를 글로 써보시면 어떨까요?"

그래서 다시 고쳤다. 고치다 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외국어 공부나 운동처럼 쓸모가 있어서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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