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캄보디아댁 누적상금 2억 돌파…"살림 잘하는 남편 고마워"

박린 2023. 7. 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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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당구 최다 6회 우승을 차지한 피아비. 사진 PBA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가 여자프로당구 최다 6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새 역사를 썼다.

피아비는 9일 안산시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2023~24시즌 2차 투어 ‘실크로드&안산 LPBA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용현지(22·하이원리조트)를 4-3(6-11 11-3 11-4 5-11 11-7 7-11 9-2)으로 꺾었다.

피아비는 지난 시즌 왕중왕전 SK렌터카 월드챔피언십 우승 이후 4개월 만에 다시 정상에 섰다. 2020~21시즌 뒤늦게 프로로 전향한 피아비는 20개 대회 만에 6번째 정상에 올라 LPBA 최강자에 등극했다. 5회 우승자 김가영(하나카드)과 임정숙(크라운해태)를 제치고 단독 최다 우승자가 됐다.

여자프로당구 최다 6번째 우승을 차지한 피아비가 손가락 6개를 펴보이고 있다. 사진 PBA


1세트를 6-11로 내준 피아비는 2세트를 7이닝 만에 끝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3세트 7이닝에서 뱅크샷 2개를 포함 하이런(한이닝 연속 최다점) 8점을 쓸어 담으며 세트스코어 2-1로 앞서갔다. 4세트를 내준 피아비는 5세트 첫 이닝에 하이런 6점을 연결한 끝에 11-7로 따냈다.

6세트를 용현지에 내줘 3-3으로 돌입한 7세트. 피아비는 단 2이닝 만에 경기를 끝냈다. 용현지가 먼저 2득점하자, 피아비가 5득점으로 맞받아 쳤다. 공타에 그친 용현지에게 공격을 넘겨 받은 피아비는 남은 4득점을 마무리했다. 연맹 시절 피아비와 4차례 결승에서 모두 졌던 용현지는 “7세트에 가면 체력전이기 때문에 제가 조금 더 어려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언니가 너무 시원하고 멋있게 끝냈다”고 인정했다. 결승전은 유튜브로 4만1000여명이 지켜봤다.

2019년 다문화 당구 아카데미에 참석한 스롱 피아비(왼쪽)와 남편 김만식씨가 손 하트를 만들었다. 부부는 30여명의 다문화 당구선수 지망생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당구 레슨을 했다. 박린 기자


이날 피아비의 남편 김만식(62)씨는 경기장을 조용히 찾아 아내의 우승을 지켜본 뒤 떠났다. 김만식씨는 그동안 아내가 부담이 될 까봐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피아비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남편이 온 줄 몰랐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남편은 부끄러웠는지 자리를 피했다. 우승하고 사진도 같이 못 찍었다. 지금까지 5~6년 동안 한 번도 저의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피아비는 “남편은 항상 저에게 잘해주는데 표현을 잘 안 한다. 매일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제가 계속 시합 다니느라 한 두달에 한 번씩 집에 갈 때도 많다. 남편은 매일 혼자 집에 있는데 제가 집에 갈 때마다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 요리를 해준다. 요리도 정말 잘 한다. 모든 살림을 혼자 다 한다. 저에게는 당구에만 집중하라고 해준다.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지난해 청주 당구장에서 만난 피아비(가운데)와 그의 아버지 찬 스롱(오른쪽), 어머니 석 젠털(왼쪽). 프리랜서 김성태


피아비는 한국으로 시집와 당구로 인생역전했는데, 이번 대회 우승 상금 2000만원을 더해 누적 상금 2억원(2억1952만원)을 돌파했다. 피아비는 소속팀(블루원리조트)에서는 대기업 부장급 연봉을 받는다. 또 건자재 기업 에스와이, 캄보디아에서 인기가 높은 자양강장제(박카스) 제조사인 동아제약 후원도 받는다.

캄보디아 출신 피아비는 어릴적 의사를 꿈꿨지만 가난 탓에 학업을 포기했다. 고향 캄퐁참에서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감자와 고구마를 캐고 밀가루를 만들었다. 하루 종일 일하면 한국 돈으로 2500원을 벌었다. 일주일에 만원 정도 벌면 온 가족이 이틀 먹고 살 수 있었다.

2010년 충북 청주시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던 ‘아빠보다 10살 많은’ 김만식씨와 국제 결혼을 했다. 이듬해 동네 당구장을 따라 갔다. 심심해 하니 연습구를 줬는데 팔이 길어서인지 곧잘 쳤다. 그날 남편이 3만원짜리 큐를 사줬다. 피아비는 인쇄소에서 박스에 구멍을 뚫고 큐가 반듯하게 나가는 연습만 3개월간 했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피아비.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인터넷으로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며 매일 울었다. 남편 김씨는 “나도 1960년대 중반 보리밥도 못 먹고 자랐다. 당신이 당구만 잘 치면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며 대회 출전비 40만원씩을 기꺼이 내줬다. 집에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한글 문구와 캄보디아 아이들 사진이 걸어둔 피아비는 2018년 세계여자3쿠션선수권 3위, 이듬해 아시아3쿠션여자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프로로 전향한 피아비는 작년 6월에는 편찮은 부모를 한국에 모셔와 치료해드렸고, 엄마와 아빠가 보는 앞에서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캄퐁참 부모님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피아비. 사진 피아비


피아비는 ‘다문화 도시’ 안산에서 우승을 차지해 의미를 더했다. 안산시의 외국인 주민이 9만명이 넘는다. 피아비는 지난 4일 베트남 선수 등과 전통복장을 입고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 마을 특구를 찾기도 했다.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에 캄보디아 국기가 보였다. 피아비는 “수원에서 거주하는 사촌오빠가 응원해주러 왔다. 캄보디아 국기를 보니 더 힘이 났다”면서 “비시즌에 봉사활동을 많이 했는데, 이제 당분간 당구를 더 연습할 예정이다. 제 목표는 하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 당구를 보고 행복했으면 한다”고 했다.

피아비는 요즘도 옷도 잘 안 사는 대신 기회가 될 때마다 마스크, 구충제, 학용품을 사 캄보디아에 보낸다. 비 시즌에는 고향을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에 ‘피아비 스포츠 종합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2019년 ‘다문화 당구 아카데미’에서 만났던 남편 김씨는 “평생 일만 하며 살았는데, 캄보디아를 찾아가 사람들을 도우니 그렇게 마음이 좋더라. 내가 이 사람을 도운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날 도왔다”며 “내가 독하게 가르칠 때 피아비가 큐를 놓았다면, 난 외국에서 마누라를 데려다가 공갈친 나쁜 놈이 됐을 거다. 이 사람이 끝까지 참아 오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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