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 시누이에게 건넨 열흘간의 한식 선물 [노부부의 집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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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시누님(시누이)이 다녀가셨다. 캐나다 동쪽 끝에 사시는 시누님은 캐나다인 남편의 큰누님이다. 우리 집인 광역 밴쿠버에서 따지면 캐나다의 반대쪽 끝이니 정말 멀어서 자주 만나지 못한다. 더구나 코로나19 시즌 동안 여행이 불가하였기에, 오래 기다리다가 작년엔 우리가 방문했고, 올해는 생일을 빙자하여 남편이 누님을 초대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한식 생신상을 차려드린다고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미역국과 잡채, 녹두전 등을 해드렸는데, 올해는 우리 집으로 오시니 우리는 더 다양한 한식을 대접할 계획을 세웠다. 사시는 지역에는 한인마트나 한인식당이 별로 없는데, 더구나 한적한 외곽 바닷가에 사시니 한식을 맛보실 기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황혼 재혼한 우리 부부의 결혼식 이후 첫 방문이신지라 더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
생일 선물로 준비한 한식 재료
이번 생신에도 지난번과 같은 음식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잡채의 발음을 또렷하게 하시면서 그 맛을 기억해 내셨고, 미역국이 아주 인상 깊었다고 미리 말씀하셔서 그것도 리스트에 넣었다. 혹자는 외국인들이 미끄러운 미역을 싫어할 거라고 하지만, 내가 초대한 서양인들 중에서 미역국을 싫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생일에 왜 미역국을 먹는지 설명해주면 더욱 재미있어 하며 먹는다.
녹두전은 작년에 레시피를 적어 드리고 왔는데, 그걸로 두 번이나 해 드셨단다. 다만 맛이 내가 한 것과 달라서, 이번에는 직접 함께 만들어 보시면서 차이를 배우겠다고도 하셨다.
사실 특별한 기술의 차이라기보다는 재료의 차이리라. 김치 대신에 사워크라우트를 사용하셨고, 다른 재료도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생일상 차리는 것 이외에, 생일 선물로 한식 재료들을 꾸렸다. 작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이런 음식들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자신 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
▲ 시누이에게 선물한 한국 식재료: 고사리, 당면, 표고버섯, 목이버섯, 간장, 깨, 미역과 레시피 |
ⓒ 김정아 |
▲ 미역국과 엘에이 갈비 생일상. 배부르면 안 된다고 최소한으로 차린 점심이었다 |
ⓒ 김정아 |
▲ 잡채, 녹두전, 도토리묵, 수제어묵으로 차린 생일상 |
ⓒ 김정아 |
시누님의 체류가 열흘이 살짝 넘는 기간이었기에 우리는 여러 가지 한식을 선보였다. 막걸리와 해물파전, 김치부침개, 골뱅이무침을 준비하여 한국식 술상을 차리기도 했고, 김밥을 싸서 소풍을 가기도 했다. 스팸은 캐나다에서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음식이지만, 부대찌개를 서빙하면서 유래를 들려드렸더니 그 상황을 이해하며 음식의 맛을 즐겁게 음미하셨다.
결정적으로 한식에 요모조모 잘 쓰이는 깻잎을 거부감 없이 즐기셔서 기분이 참 좋았다. 사실 향이 거북하다고 싫어하는 외국인들도 은근 많이 있는데, 우리 식구들은 다들 즐겨주니, 깻잎을 좋아하여 집에서 직접 키우는 보람이 있었다.
결국 떠나시기 전날, 지금 철이 늦기는 했지만, 깻잎 씨앗을 좀 얻어갈 수 있냐고 물으셔서, 진짜로 깻잎 마니아가 되셨다는 것을 실감했다.
벌써 일흔여덟이 되신 시누님을 뵈면, 어쩌면 저렇게 젊은 마음으로 사실 수 있는지 늘 놀랍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거부감이 전혀 없다. 또한,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나이듦이 서럽지 않다.
그런 시누님께 다양한 한국의 맛을 넉넉히 소개할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또 한 뼘 가까워졌다. 비록 한 나라의 양쪽 끝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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