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문의 진심 합심] 힐만 감독의 스위트 룸

안희수 2023. 7.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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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 대신 선수·직원 행복 선택
감독은 단순 관리자 역할 아닌 선수·프런트· 코치 마음 얻어야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거실부터 보입니다. 높은 층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도 좋습니다. 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아빠, 여기서 지내는 거야?” 아이가 벌써 신이 났습니다. 호텔 스위트 룸입니다. 아빠는 어깨를 으쓱합니다. “어, 그래. 감독님이 우리 가족들 편히 지내라고 이 방을 주셨어.”

2018년 여름 무더웠던 어느 날, SK 와이번스 야구팀의 현장 직원 A가 가족들을 널찍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는 서울 도심의 고급 호텔에서 A 가족은 이틀간 머뭅니다. 시즌 단위로 운영되는 야구단 생활에서 여름 휴가는 고사하고 아이들 방학이나 가족들 경조사에 신경 끄고 살던 A. "평일에도 밤늦게 들어오거나 원정을 다니니까 아이들 얼굴 보기가 힘들죠. 이렇게 원정 때 감독님 큰 방을 선수나 직원들 가족이 쓰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가족들이 더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해요."

트레이 힐만 당시 SK 감독 아이디어였습니다. "나는 그냥 일반 방이면 돼요. 선수, 직원 가족들이 찾아오면 함께 편히 지내게 제 방을 주세요."

그래서 와이번스의 스위트 룸의 배정 원칙은 다른 팀과 달랐습니다. 프로야구팀 감독님들에겐 원정경기 때 호텔 스위트 룸을 드립니다. 비행기 좌석도 비즈니스 석을 제공하는데 팀의 리더로서 걸맞은 예우와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힐만 감독은 자신의 방을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합니다. 선수와 직원의 행복을 선택합니다. 그의 진심을 보여주고 무엇을 얻었을까요. 존경과 헌신이었습니다. 

저는 팀에서 일할 때 다른 팀 감독님이 어떤 리더십을 보이는지 궁금했습니다. 리더십에는 정답이 없고 저마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팀의 훈련 방식, 대화 스타일, 인터뷰 워딩 등을 찾아 봅니다. 상대팀의 훈련시간에 맞춰 미리 도착해 살핍니다. 제가 모신 김경문 감독님이 상대팀을 분석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감독의 말과 행동은 감독 개인의 리더십 뿐만 아니라 감독의 파트너인 코칭스태프, 그리고 프런트 조직과 호흡도 잘 맞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감독이 생각하고 말한 것을 코치와 프런트가 진심으로 이해했는지, 조율됐는지는 금방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엇박자가 나고 결국 좌초합니다. 야구만 그럴까요. 세상사 비슷합니다. 어쨌든 그런 합심을 끌어내는 것도 감독의 역량입니다. 스위트 룸 이야기를 들려주며 뿌듯해 하던 A에게서 저는 당시 SK 야구의 합심을 느꼈습니다.

힐만 감독의 스토리를 다시 꺼낸 건 최근 코칭스태프 보직이동으로 요란한 롯데 야구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롯데 야구도 로이스터라는 훌륭한 외인 감독의 경험이 있지만 그의 ‘no fear’ 야구는 프런트의 벽을 넘지 못한 미완성이었습니다. 힐만의 사례는 한국과 미국의 다른 문화와 야구전통 아래서 어떻게 자신의 철학을 구현해 냈는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리더십 교재입니다. 

그는 한국, 미국, 일본 프로야구에서 모두 감독을 지내고, 한국과 일본에서 최정상에 오릅니다. 감독으로 정말 성공한 분입니다. 한국서 2년만에 팀을 우승시키며 강팀으로 이끄는 많은 스토리를 만듭니다. 끝내기를 맞은 투수, 결정적 실책을 한 내야수를 꼭 끌어안는 장면. 투수 박종훈은 우승 당시 인터뷰에서 “제 속사정 털어놓은 건 힐만 감독님이 처음이었어요. 선수 이야기 많이 들어주던 아버지 같은 분이세요”라고 말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힐만은 지략에 앞서 ‘코칭=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힐만 감독은 프런트 고위층과 코치 운용을 놓고 담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런 스토리는 외부로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기강을 잡기 위한 그의 정보력과 판단에는 구성원 다수의 지지와 신뢰가 스토리가 돼 내부 조직에 퍼지고 쌓였기에 가능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힐만의 스토리에는 여러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질적인 문화를 경험하는 외국인 감독에게,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분들과 팀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자리가 단순히 관리자(manager)여선 안된다 입니다. 감독 스스로 선수, 코치, 프런트로부터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도와야 합니다. 당신의 스토리는 누구를 위해 쓰여지나요.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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