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ALONE‥나와 연결되는 시간

박소연 2023. 7. 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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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새롭고 낯선 공간에 있을 때,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나와 비슷한 영혼이나 공동체를 찾으려 애쓸 때, 상실과 질병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비를 넘길 때 우리는 선선한 혹은 처절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없기에 더욱 외롭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은 쉽게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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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었다. 평소 성실하게 공부를 해놓지 않았던 탓에 다음날 시험을 앞두고 새벽 1시까지 '벼락치기'를 하고 있었다. '일단 외우자' 머릿속에 시험 범위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연두색 커다란 귀뚜라미가 방안을 뛰어다녔다. 아파트이긴 하지만 1층이라 창문 틈 사이로 불빛을 보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빠를 깨울까? 아니야. 주무시는데….' 급한 대로 커다란 양푼을 가져와 귀뚜라미를 덮었다. 양푼 속에서 귀뚜라미가 계속 뛰고 있는 건지 '챙~챙 쓱~쓱' 으스스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외웠다. 안방에서 부모님은 쿨쿨 주무시고, 양푼이 속 귀뚜라미는 계속 뛰고, 나는 외웠다. 그리고 외로웠다. 귀뚜라미와 나, 아 세상은 혼자구나.

#자취 시절. 아마도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였던 것 같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금요일과 토요일은 친구들과 만나서 노느라 못 느꼈던 외로움이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집주인이 포장 비닐을 벗기지 말아 달라고 해서 움직이면 바스락거리는 '슈퍼 싱글' 사이즈 침대에 혼자 누웠다. 우주의 광활함이 느껴졌다. 이 넓은 우주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은 아마도 영화 '그래비티(2013)'의 라이언 스톤(샌드라 블록) 박사보다 내가 먼저 지구의 한 바스락거리는 슈퍼 싱글 침대 위에서 느낀 듯하다. 이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면 광활한 우주 속 미아가 될 것 같은 기분에 침대 끄트머리에서 한없이 몸을 웅크렸다.

외·로·움. 이 세 음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거나 드물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에 관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남에게 하기는 어렵다. 새롭고 낯선 공간에 있을 때,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혹은 인간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나와 비슷한 영혼이나 공동체를 찾으려 애쓸 때, 상실과 질병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비를 넘길 때 우리는 선선한 혹은 처절한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없기에 더욱 외롭다.

이 책 'ALONE'은 외로운 존재가 됐던 경험에 대해 22명의 작가가 털어놓는 개인적인 고백이다. 만성질환을 겪으며 병원에서 홀로 지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 유산 후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동안 들여다보게 된 자신의 마음, 이민자 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 홀로 자신을 키우던 어머니를 잃어버릴까 공포에 떨었던 유년 시절에 대한 회고 등이 깊이 있는 눈을 통해 전달된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은 쉽게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나만 그런가'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면서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무수한 인간관계들 속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들 사이에서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들의 외로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속 깊은 친구의 위로처럼 다가온다.

모두가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고독한 순간을 통해 우리의 내면이 다시 무언가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나와 소통하고 남들이 바라보는 나, 타인이 원하는 나 대신에 내 마음에 드는 나를 찾을 수 있다. 습관처럼 타인과의 연결을 찾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둘러보는 시간은 소중하다. 책 속 작가의 말처럼 자기 자신과의 끈을 놓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끈을 이어갈 수 없다. 자신의 중심과 연결돼 있을 때 다른 사람과도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타인과 연결을 꾀하느라 느슨해진 '나 자신과의 연결'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거나 안심할 수 있게끔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없는, 혼자 고요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진다. 또 주변에 아끼는 사람이 힘들거나 외로워 보인다면, 그가 갇혀 있는 그 감옥에 잠시나마 함께 있어 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ALONE|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나탈리 이브 개럿 편집|혜다|366쪽|1만6800원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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