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엔 지금 “떡볶이 1인분 n빵해요”[끝모를 물가쇼크①]
체감경제고통지수 청년층 가장 높아
“한 끼는 일상” 식비부터 줄인 대학생들
침수 피해 우려에도 월세 아끼려 반지하로
인플레이션의 끝은 어디인가. 서민은 허리띠를 조르며 버티는 중이다. 음식·숙박, 교통, 식료품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청년 소비 지출 비중이 큰 부문들이다. 취업난까지 겹쳐 전 연령대 중 청년이 체감하는 고통은 더 크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Fed) 기준금리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연준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5.00~5.25%로 동결했다. 지난해 3월 이전까지만 해도 제로 금리였다. 미국 기준금리 5%대는 지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린 이유는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는 시중에 엄청난 돈을 풀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發) 원자재 가격 인상도 물가 급등에 가세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6월 40년 만에 최고치인 9.1%로 정점을 찍었다.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물가는 진정세라는데…체감물가는 고공행진
6월 한국 소비자물가는 21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다. 언뜻 진정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1.12(2020년=100)로 전년 같은 달보다 2.7% 올랐다.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안정세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체감물가는 딴판이다. 공공요금과 외식비 등 실생활과 밀접한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외식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6%대를 기록했다. 전기, 가스, 수도는 1년 전보다 무려 25.9% 올랐다. 가공식품 상승률도 7.5%로 지난달보다 더 올랐다. 라면 가격은 1년 전보다 13.4%가 올랐고 빵과 과자도 10~1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런 괴리는 왜 생길까. 통계청은 458개 상품·서비스 상품별로 가중치를 부여해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한다. 일반 소비자는 이 중 일부만 소비한다. 또 구입 품목이나 빈도에 따라 느끼는 체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먹거리 물가가 가격이 오른 채 요지부동인 점도 체감물가를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 식품기업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곡물 가격 등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며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랐다. 올해 원자재값이 하락세인데도, 식품기업들이 이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물가·취업난 이중고…‘학식=가성비’는 옛말
대학생은 특히 타격이 크다.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수치화한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해 산출)를 발표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청년(15~29세)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5.1였다.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60~69세 16.1, 30~39세 14.4, 50~59세 13.3, 40~49세 12.5 순이었다.
대학생은 소득이 없거나, 있더라도 직장인에 비해 적다. 저소득층은 전체 소비에서 식비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전국대학생네트워크(이하 전대넷)가 지난 3월 대학생 2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부담이 되는 지출 항목 1위가 식비(56.1%)였다. 전경련은 “청년이 소비를 많이 하는 부문에 물가 상승이 집중됐다”며 “취업 준비 중이거나 소득이 적은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이 생활비 상승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풀이했다.
문제는 식비를 아끼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성비 대명사였던 학식은 줄줄이 인상된 지 오래다. 서울대는 지난해 3000원~6000원에 판매되던 학식 가격을 1000원씩 인상했다. 동덕여대는 일부 학식이 4000원대에서 6000원으로 올랐다. 한국외대도 지난해 2학기부터 중·석식 가격을 500원 올려 4000원이 됐다.
떡볶이 1인분 나눠먹고, 굶고…궁여지책도 한계
적게 먹는 것만이 식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많은 대학생이 굶거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방법을 택했다. 전대넷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이 가장 먼저 줄인 지출 항목은 식비(77.2%)였다. 가스, 난방비가 2위로 11.5%를, 교통비는 6%로 3위를 차지했다. ‘세 끼는 사치, 두 끼는 과식, 한 끼는 일상’이라는 자조마저 나온다.서울 모 대학 재학생 김모(24·여)씨는 “식비를 아끼려 외출을 줄였다. 집 밖에 나가면 다 돈이기 때문”이라며 “수업이 있어서 부득이 나가는 날은 그냥 안 먹는다”고 말했다. 배고픔을 참고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해 먹는 밥이 그날의 첫 끼인 날도 여럿이다. 정 배고픔을 참기 어려울 때는 편의점에서 가장 저렴한 ‘기본’ 김밥, 초코 바를 사 먹거나 대용량 음료 전문 프랜차이즈서 파는 미숫가루 한 잔으로 버텼다.
배달 최소 주문금액 마저 오르면서 1인분을 나눠 먹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빈도도 늘었다. 김씨는 “재학생이 모인 익명 커뮤니티에 ‘떡볶이 1인분 같이 먹고 나눠 계산할 학우들을 찾는다’는 모집 글이 더 자주 올라온다”고 했다. 난방비, 전기세 아끼는 법도 화제다. “난방 안 트는데 왜 가스비가 이 정도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거나 공과금을 더 줄일 방법을 묻고 공유한다. 김씨는 “한 학생이 돈이 없어서 밥을 안 먹고 버티고 있는데 아르바이트마저 구해지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글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월세 싼 반지하로 이사도…“침수 걱정되지만, 어쩔 수 없어”
고정비용 지출을 줄이려 침수 위험을 감수하고 반지하 삶을 택한 학생도 있다. 4학년까지 마친 뒤 휴학 중인 대학생 이모(24·여)씨는 이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2개를 뛴다. 월요일에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다른 편의점에서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자리를 지킨다. 한 달 수입은 약 80만원. 이씨는 동아리 등 외부 활동이 잦아 식비를 줄이기 쉽지 않은 처지다. 급격히 올라 버린 식비를 충당하기 위해 주거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이씨는 지난 2월부터 지인과 학교 근처 반지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 짜리 집을 찾았다. 학교 근처 2층짜리 집이 하나 있었지만 두 명이 살기에는 비좁았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반지하(투룸)가 있다는 소식에 망설임도 잠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지난해 8월 폭우로 서울 반지하 주택이 침수돼 4명이 숨졌다. 두 사람에게 당장 더 급한 것은 월세를 아끼는 것이었다.
이씨는 “월세 200만원이면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더 하지 않아도 된다”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불안하다. 빗방울이 집 안쪽까지 들어와 벽지에 자국이 남기도 한다. 그나마 지대가 높아 별일이 없길 바랄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11일 [끝모를 물가쇼크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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