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고교 때부터 우주 관련 활동…2032년 ‘조남석 로버’ 달에 보낼 거예요
“모든 공학자들의 꿈은 우주에 무언가를 보내는 것입니다. 내 손으로 만든 달 탐사 로버(탐사차)를 2032년 달에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해 11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을 발표할 때 조남석(29) 무인탐사연구소 대표가 했던 다짐이에요. 석·박사 출신의 엘리트 연구원들이 즐비한 우주항공 분야에서 20대 스타트업 대표 남석씨는 단연 돋보입니다. 그는 현재 우주스타트업 무인탐사연구소를 운영하는 동시에 한양대에서 지능형로봇학 전공 박사과정을 이수 중이죠.
다양한 우주 분야 대외활동이 창업으로
부산 소년 남석씨는 어릴 적 ‘기계 덕후’였어요. 제 몸보다 큰 헬리콥터를 만들어 낙동강 하구둑에 올라 날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죠. 무선자동차든 헬리콥터든 자신이 만든 기계가 제 손에서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짜릿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카이스트에서 열리는 우주 관련 행사에 처음 참석했어요. 그곳에서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박사님도 만났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하는 많은 연구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죠. 로켓을 만들거나 전투기 날개를 설계하는 등 우주를 향한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어른들을 보니 무척 멋있는 거예요. 이다음에 나도 꼭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우주과학 분야 연구원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의 시야는 그때부터 우주로 향했어요. 2014년 동서대 메카트로닉스 공학과에 입학한 남석씨는 자신이 석·박사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나라도 달 탐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 전망했죠. 10년 후쯤 자신이 만든 로봇을 달에 보내겠다는 구체적인 꿈을 품었어요. 하지만 박사학위를 수료하더라도 당장 한국 우주개발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연구원이 되긴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관련된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조남석’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보기로 했죠. ‘한국의 NASA’라 할 수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하 항우연)이 주최하는 거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SNS 댓글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또 ‘기계 덕후’ 면모를 살려 3D프린터 도입 초기에 직접 드론을 만들어 ‘NASA 휴먼어드벤처전 3D 프린팅 드론 전시’(2015년 12월~2016년 2월)에 출품도 했죠. 직접 만든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아마추어 천문동아리 활동도 했고, 부산에서 가장 큰 드론에 이어 작은 규모지만 전기자동차도 만들었죠. 드론 분야에서 남석씨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고려대·구글캠퍼스 등에서 강연도 하는 등 20대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항우연 행사에 가서 방명록에 이름을 쓰니 한 연구원이 ‘남석군, 반가워요’라며 저를 알아보시는 거예요.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항우연 원장님에게도 인사를 드리게 됐고 그 후 항우연과 특별한 인연이 시작됐죠.”
대학 3학년 때 항우연으로부터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 제안을 받은 겁니다. 남석씨도 학생 신분으로 당장 연구를 시작하기보다 창업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죠. 2018년 3월 부산에서 무인탐사연구소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창업의 여정을 시작했어요.
“유명세보다 업적으로 평가받고 싶다” 다짐
달에 갈 로봇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지만 무인탐사연구소의 첫 번째 개발 제품은 드론입니다. 당시로선 대학생이 우주 로봇을 만들겠다고 하면 허무맹랑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했어요. 그래서 우선은 다양한 기능의 드론을 많이 만들면서 실력을 쌓아나갔죠.
항우연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창업하니 장점이 많았어요. 외부로부터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이 줄어들었고 지방대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일도 사라졌죠. 대학생 신분으로는 가기 힘든 우주 관련 학회에 후원사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어요. 국회에서 열리는 우주 관련 행사에도 수시로 패널로 참여했고, 달 탐사 관련 간담회에서 카이스트 교수, 연구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누리호 1차 시험발사 장면을 나로우주센터에서 VIP 자격으로 직접 보게 됐어요. 발사가 성공하는 순간 연구원들이 환호하거나 우는 모습을 보며 뭔가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더라고요. 그분들은 십수 년, 길게는 30년 이상 한 분야에 몸담으면서 한국의 자력 로켓 개발이라는 업적을 이룩했는데 저는 별 업적도 없이 그저 유명세만으로 그분들과 한자리에 서 있다는 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죠. 그때의 경험이 터닝포인트가 됐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나’ 생각에 화도 났고 ‘10년 뒤 태극마크를 단 로봇이 달에 갈 때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에 부끄러웠죠. 누리호 개발의 주역들은 20대인 남석씨를 ‘우주 분야 미래세대’라 불러줬지만 10년 후에도 그저 별다른 업적이 없다면 지금 같은 영광스러운 순간을 자신이 누릴 수 없겠구나 싶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날 이후 남석씨는 달에 가는 로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로봇 제작과 테스트에 매진하고 있죠.
정부 지원받고 국내외 우주 회의·전시 참여 활발
무인탐사연구소에는 파트타임 연구원을 포함해 10명 내외 직원들이 있어요. 남석씨가 현재 한양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다 보니 한양대 출신이 대부분이죠. 사무실도 한양대 서울캠퍼스 아래 성수동에 있고, 안산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근처에 테스트공간이 있어요.
우주 분야에서 청년이 활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정부에서도 남석씨의 활동을 적극 지원합니다. 국내외 언론 노출도 잦아졌죠.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이 ‘2032년엔 한국도 달에 가겠다’는 선언을 했을 때 CNN비즈니스가 ‘한국의 달 탐사 로봇은 조남석이 만들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어요. 또 7월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릴 G20 우주경제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국립부산과학관·국립중앙과학관 등지에서 로버 관련 전시를 했고, 매년 열리는 국제우주콘퍼런스(IAC·International Astronautical Congress) 한국관에 무인탐사연구소가 개발한 로버를 선보이기 위해 워싱턴DC·두바이·파리 등지를 누볐으며 올해 10월에는 아제르바이잔에 찾아갈 예정이죠. 다양한 우주 관련 포럼에 참여하며 카이스트나 우주 민간기업과 컨소시엄을 맺고 협업해 나가고 있어요. 고교생 시절부터 10년간 꾸준히 해왔던 활동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이룩한 거죠.
사실 대외활동을 통해 우주 분야에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는 무시나 편견으로 인한 쓰라린 경험도 많았습니다. 사회생활의 쓴맛을 경험할수록 ‘내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천착했죠. 드론 작업을 하던 부산대 앞 건물 1층에 무인탐사연구소 간판을 크게 내걸었던 것도 그런 심정을 반영한 겁니다.
대학을 다닌 5년 동안 남석씨는 술도 한 잔 안 마셨어요. 수업이 끝나면 3D 프린팅업체나 드론 제작업체에서 일하거나 강사로 활동했고, 2~3학년 때는 중견기업을 포함해 드론 관련 기업 3곳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죠. 당시엔 크게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에 마다하고 창업의 길을 선택했어요. 한국인 엔지니어로서 달 탐사 프로젝트에 의미 있는 업적을 이루고 싶다는 욕심이 컸죠.
“2023년 1학기에 박사과정을 수료하는데 이른 시일 내에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고 싶습니다. 항우연 연구원이 되겠다는 초기의 진로는 창업하면서 변했어요. 스타트업 대표로서 무인탐사연구소를 계속 운영할 생각입니다. 우주 분야 프로젝트는 특성상 짧으면 5~6년, 길면 10~15년도 걸리죠. 그러다 보니 자기주도적으로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운영하기엔 창업가가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우주산업은 기술 개발을 위한 막대한 비용의 투자가 장기간 필요하며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매출이 바로 발생하기는 힘듭니다. 남석씨의 무인탐사연구소도 자체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해 자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우주산업의 수요는 정부 위주라 민간에는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죠. 그래서 로봇 시스템이나 드론 부품 제작 등 외주를 하거나 창업지원자금으로 버티기 중이에요. 남석씨는 이렇게 버티다 보면 달에 가는 로봇을 개발하는 업체가 한국에서는 무인탐사연구소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2032년엔 자신의 로버가 태극마크를 달고 달에 가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죠. 그러면서 우주 분야로 진로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하루빨리 ‘내 것’을 찾을 것을 조언했습니다.
“공부를 잘해 소위 명문대에 갔다고 해서 그 자체로 엘리트나 뛰어난 사람이 된 게 아니에요. 공부를 잘한 보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환경에서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작정 공부를 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그것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떤 대학에 가야겠다.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해야 합니다. 저는 인류 역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일조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서 우주를 선택했습니다.”
글=김은혜 객원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조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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