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부실채권 30,000,000,000,000원
고금리 충격 '이제 시작'
30,000,000,000,000원. 숫자를 세기도 힘든 이 돈은 국내 금융사들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의 규모다. 올해 들어 석 달 동안 불어난 금액만 3조원이 넘는다. 매일 170억여원에 달하는 부실이 쌓인 셈이다.
치솟은 금리의 여파로 대출을 제 때 갚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로 인한 악순환으로 돈이 돌지 않으면서 금융 리스크는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지만 고금리 충격이 아직 폭풍전야일 뿐이란 관측에 긴장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보험사·신용카드사·저축은행·캐피탈사·증권사·선물사·자산운용사·부동산신탁사 등 국내 843개 금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정이하여신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29조460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2.2%(3조1993억원) 늘었다. 이 기간 하루 평균 177억원 꼴로 증가했다는 계산이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통상 석 달 넘게 연체된 여신을 가리키는 말로, 부실채권을 분류하는 가늠자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업권별로 보면 우선 은행들의 고정이하여신이 10조441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0% 늘며 10조원을 웃돌았다. 보험사의 고정이하여신도 3조786억원으로 4.5% 증가했다.
특히 제 2금융권 중에서도 개인 대출이 많은 금융사들의 부실채권이 빠르게 확대됐다. 저축은행업계의 고정이하여신은 5조7906억원으로 23.4%나 늘었다. 캐피탈사 역시 3조5623억원으로, 신용카드사는 1조7008억원으로 각각 22.2%와 22.4%씩 해당 금액이 급증했다.
금융투자업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증권사의 고정이하여신은 3조422억원으로 13.7% 늘며 3조원을 넘어섰다. 자산운용사와 선물사도 고정이하여신이 926억원으로 10.% 증가했다. 부동산신탁사의 관련 액수는 1조7035억원으로 22.0% 늘었다.
금융사별로 보면 기업은행의 고정이하여신이 2조7037억원으로, 단일 금융사로는 유일하게 2조원 대를 나타내며 최대를 기록했다. 이어 KDB산업은행의 고정이하여신이 1조3947억원으로 조 단위를 나타냈다.
이밖에 ▲신한은행(9063억원) ▲NH농협은행(8668억원) ▲OK저축은행(8618억원) ▲KB국민은행(8172억원) ▲한국수출입은행(8112억원) ▲현대캐피탈(7799억원) ▲하나은행(6812억원) ▲신한투자증권(5859억원) 등이 고정이하여신 규모 상위 10개 금융사에 이름을 올렸다.
금융권 부실채권이 확대되고 있는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려 온 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고금리 여파로 개인과 기업 가릴 것 없이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금융사의 여신 건전성에 악영향을 주는 양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문제는 고금리에 따른 충격파가 앞으로 더욱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기준금리가 기대대로 정점을 찍고 내려가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급증한 대출 규모를 감안할 때, 금리 리스크는 올해 하반기 이후부터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말 2629조8479억원이었던 국내 금융권의 대출 등 여신 잔액은 지난해 말 3429조5683억원으로 30.4%나 늘었다. 은행권이 2165조8611억원으로, 비은행권 역시 1263조7072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7.5%와 35.7%씩 여신이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외 인플레이션 기조가 생각보다 더디게 완화되면서 금리 인하로의 전환 시기도 예상보다 늦어지는 분위기"라며 "이로 인해 고금리가 지속되고 이자 압박이 누적되면서 금융사의 여신 건전성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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