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는 '친명' 박영선은 '비명'…野 대표 여성정치인의 엇갈린 행보
朴, 이재명 공천권 포기 등 요구하며 쓴소리…존재감 키우기
다선, 여성, 투사. 총선을 200여일 앞두고 공통점이 많은 더불어민주당 두 여성 정치인의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바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추 전 장관과 박 전 장관은 당장의 정치적 영향력과는 별개로 여성이 드문 정치권에서 다수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보유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최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추 전 장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를 겨냥한 강경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그가 친명(친이재명)계로 갈아타기를 시도한다고 보고 있다. 당내 주류로 입지를 다져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한 포석을 까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박 전 장관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공천권 포기를 일찌감치 주문하고 친명계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등 전 비명(비이재명)계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수를 위해 보스턴에 머물고 있는 그는 지난해 말부터 당내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추다르크', 내부 총질하며 친명계 갈아타기 시도?
민주당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추미애 전 장관을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헌정 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 최초의 선출직 여성 여당 대표,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대구·경북 출신 등 추 전 장관을 수식하는 표현은 세기 힘들 정도다.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 '돼지 엄마' '탄핵의 여왕' '킹메이커' 등 별명도 다양하다.
추 전 장관은 화려한 이력, 굵직한 경력 덕분에 매 선거마다 언급될 정도로 존재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하며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바람에 '윤 대통령 당선 1등 공신'으로 낙인찍히면서, 그에 대한 당내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
그런 추 전 장관의 최근 행보가 거침없다. 종종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그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을 공격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추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인 2021년 자신이 법무부 장관을 사퇴하게 된 배경으로 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표를 지목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재·보궐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검찰개혁 이슈가 퇴장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3일에는 페이스북에 "나의 '사직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청와대의 요구에도) 사직을 거부했고 사직서를 쓸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이 장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했다고 재차 주장한 것이다.
이 전 대표와 관련해서는 "이 전 대표는 그렇게 하면 안 됐다. 재·보궐선거 때문에 내가 퇴장해야 한다고 하면 안됐다"라며 저격했다. 지난 5일 방송 인터뷰에서는 "아무 계획도 안 하고 두루뭉술 현상 관리만 하면 누가 표를 주느냐"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고(高)에너지 민주주의인데, 그걸 수용하는 정치집단이 자격 미달이고 능력 미달·의지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추 전 장관의 거침없는 입에 민주당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야권 내 계파 갈등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친명계는 추 전 장관의 '친명계로 갈아타기'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에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친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문 전 대통령을 저격하고 이 전 대표를 저격하는 것이 어떻게 이재명 대표에 줄 서는 것이 되겠는가"라며 "오히려 더 부담이 돼서 줄 서려고 해도 줄 설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도 지난 6일 "아마 추 전 대표께서 총선 (출마) 의지가 강한 듯하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이라며 "문 전 대통령도 때리고 이 전 대표도 때리고 그런데 실질적인 의도는 이 전 대표를 때리는 것일 것 같다. 그러면 이재명 쪽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결집하지 않겠느냐 그걸 노린 것 같다"고 했다.
'개혁 성향 강성 정치인' 朴, 당내 인사 중 첫 '분당' 언급
박영선 전 장관도 중량감 있는 민주당의 대표 여성 정치인으로 꼽힌다. MBC 기자 출신인 박 전 장관은 MBC 선배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박 전 장관도 추 전 장관처럼 다수의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다. 여성 최초 민주당 계열 정당 대변인, 최초의 여성 정책위의장, 최초의 여성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해 2014년에는 헌정 사상 첫 여성 원내사령탑이라는 기록을 썼다.
비례대표에 이어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내리 3번 당선되며 인지도와 중량감을 키워온 박 전 장관은 '개혁 성향의 강성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법사위원장이던 2013년 12월 31일 여야 지도부가 처리키로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재벌 특혜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심야까지 버틴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박 전 장관은 자신의 강성 이미지를 의식한 듯 원내대표 선거 때 "내가 그렇게 센 여자가 아니다. 나도 눈물 많은 여자"라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의원님들께 다가가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2021년 4월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18.3%p차로 완패했다. 이후 박 전 장관은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6·1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 참여를 요청했지만, 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잠행을 이어갔다.
그랬던 박 전 장관이 지난해 6월 이 대표의 당권 도전을 반대하면서 민주당의 '금기어'인 '분당(分黨)'을 꺼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표를 후면지원했던 것과는 달리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표면화되자 "당이 굉장히 혼란스럽고 분당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 걱정이 많다"고 했다.
미국 출국을 앞둔 지난해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실 정치 지분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내려놓아야 사법리스크에서 탈출할 수 있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로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 이른바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정당에 접목시킨 'DAO 정당' '디지털 정당' 도입을 주장했다.
박 전 장관은 지난달 20일엔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과 관련해 "민주당이 미래를 생각하는 메시지를 좀 더 강하게 그리고 더 개혁 드라이브를 걸걸어야 된다"며 "이것(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좀 더 빨리 나왔으면 그만큼 민주당이 앞으로 더 많이 전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이 정계 복귀 여부에 말을 아끼고 있지만, 그가 미국에 체류하면서도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여전히 내고 있다는 점에서 총선 출마 가능성 등을 완전히 닫을 수 없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제기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전 장관이 '이재명 비토의 길'을 열어준 셈"이라며 "지금은 미국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까지 미국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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